신규 의사보다 은퇴자 더 많은 ‘필수과’…“명맥 끊긴다”

신규 의사보다 은퇴자 더 많은 ‘필수과’…“명맥 끊긴다”

기사승인 2024-07-31 06:00:09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수술실 안으로 의료진이 들어가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등 이른바 ‘필수의료과’들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대표적 필수과로 심장 질환과 폐암 관련 수술을 하는 흉부외과에서 수련하는 전공의는 전국 병원에 12명만 남았다. 신규 의사보다 정년으로 은퇴하는 의사가 더 많은 ‘인력 역전 현상’이 벌어지며 명맥이 끊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1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가 지난 24∼26일 전국 수련병원 흉부외과 전공의 사직 현황을 집계한 결과, 근무 중인 레지던트가 12명에 불과했다. 기피과로 꼽히는 흉부외과의 어려움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낮은 건강보험 수가와 의료소송 부담 등으로 인해 지원자가 꾸준히 줄고 있다. 신규 지원자는 1994년 57명에서 2005년 47명으로 감소한 이후 2022년까지 해마다 20~30명대에 그쳤다. 2023년 40명으로 지원자가 반짝 증가했으나 올해 들어 빚어진 의정 갈등 사태로 추가 인력 확보가 더 어렵게 됐다.

전공의 감소는 신규 전문의 배출 차질로 이어진다. 내년에 전문의 시험 자격이 있는 레지던트 4년차 24명 중 6명만 복귀한 상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존 흉부외과 전문의마저 은퇴를 앞두고 있다. 올해 은퇴하는 전문의는 32명에 달하지만, 신규 전문의는 21명에 불과하다. 오는 2026년부터는 연간 50명 이상씩 은퇴한다. 2026년 54명, 2027년 56명, 2028명 53명, 2029년 59명의 전문의가 정년을 채운다. 학회는 “전공의 12명으로는 연간 2만건이 넘는 심장 수술과 폐암 수술을 완수할 수 없다”며 “미래에는 선택된 환자만 수술받게 될 게 자명하다”고 했다.

필수과가 무너지니 그 밑을 받치던 응급실도 흔들리고 있다. 응급의료센터는 1차적인 검사나 처치 후 전문적인 치료를 이어나갈 수 있는 배후 진료과의 지원이 중요한데 지원을 맡을 수 있는 인력이 줄어드니 환자를 수용하더라도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권역별 응급의료의 마지노선이라고 일컫는 전국 44개 권역응급의료센터들마저 배후 진료과 인력이 없어 정상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다.

중앙응급의료센터 종합상황판(통합응급의료정보 인트라넷)에 따르면 대다수의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일부 진료가 불가능한 상태에 처했다. 고려대안암병원은 29일 인트라넷을 통해 인력 부재로 안과 응급 수술을 할 수 없다고 알렸다. 가천대길병원은 30일 흉부외과 인력 부족으로 응급실 수용이 제한된다고 통보했다. 경북대병원은 30일 간담췌외과, 이비인후과, 비뇨의학과, 성형외과, 이식혈관외과 의료진이 부족해 응급진료가 불가하다고 공지했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의료진이 응급의료센터 안으로 환자를 옮기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응급실 의사들은 의료 위기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응급실 처치 후 어려운 수술을 도맡아서 할 수 있는 전문의가 멸종해가고 있다”며 “가르치는 사람이 없는데 제대로 된 수련교육을 받은 전문의가 배출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현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필수과, 비필수과로 진료과를 나누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짚었다. 김 교수는 “흉부외과가 무너진 뒤 일반외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등이 차례로 쓰러지며 그 여파가 응급실까지 밀려왔고 환자를 가려서 받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진료과들이 마비되면 응급진료 뿐만 아니라 외래나 수술 등이 멈추고 결국 병원은 문을 닫는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수도권은 병실이 없어서 환자를 못 받고, 지방은 전문의가 없어서 환자를 못 받는다”며 “생명을 직접 다루지 않는다고 해서 필수과, 비필수과로 구분지어선 안 된다. 배후 진료과가 유지될 수 있도록 정부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소아청소년과도 출산 저하에 이어 지원자 급감, 인력 이탈 등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신손문 부산백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전공의 사직에 따른 의료공백 사태 이전부터 소아청소년과는 명맥이 끊길 위기에 놓여있었다고 토로했다. 

신 교수는 “2017년 이화여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 이후로 소아청소년과는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해 서서히 말라가고 있다”며 “소아 세부분과 의사가 있는 병원을 찾아보기 힘들다. 기존 인력이 점점 빠지는 가운데 신규 전문의가 일정 수준 이상 배출되지 않으면 진료 명맥이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은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신생아 4명이 시트로박터 프룬디균에 감염돼 패혈증으로 사망한 사건이다. 이 일로 의료진 7명이 업무상과실치사죄로 재판을 받았지만 대법원은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의대생과 전공의의 복귀가 요원해지며 신규 의사와 전문의 배출에 비상이 걸리자 정부는 그 대책으로 상급종합병원의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을 강조하고 있다. 내년 흉부외과 신규 전문의가 6명에 그칠 것이란 예상과 관련해선 진료과목별로 대처하기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김국일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30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례브리핑에서 “전문의 중심 병원 시범사업을 진행하려고 준비 중이다”라며 “지난주 상급종합병원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가졌고, 의견 수렴 후 오는 9월 중 사업을 시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전체적으로 전공의가 한꺼번에 많이 빠져나간 상황에서 진료과목별 대처는 쉽지 않다”라며 “의학회 등과 협력해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하고 필수진료가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신경 쓰겠다”고 덧붙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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