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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간 우리는 많은 피를 흘렸다. 더 이상 무고한 죽음은 없어야 한다.”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의료인력 수급추계기구 법제화를 위한 공청회’에 참석한 허윤정 단국대병원 권역외상센터 교수의 말이다. 허 교수는 의정갈등 사태로 인해 의사도, 환자도 많은 피해를 입었다며 의사들이 의료소송 부담에서 벗어나 마음껏 안심하고 생명을 구하게 해달라고 촉구했다.
허 교수는 “24시간 당직, 월 10회 36시간 연속 근무 등 극한의 노동 강도 속에서 대량의 출혈을 쏟으며 온몸이 부서진 채 실려 오는 중증환자들을 보고 있다. 어제도 24시간 당직을 서고 이 자리에 섰다”라며 “열정과 사명감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적자를 면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얽혀있다 보니 단국대병원 외상센터에는 2020년 입사한 이래 단 1명의 후배 의사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권역외상센터는 교통사고, 추락, 산업재해 등으로 인해 심각한 외상을 입은 환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의료기관이다. 중증외상 환자가 최소한의 시간 내에 최상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 생존율을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고된 업무에 따른 고질적 인력난을 겪고 있다.
허 교수는 “수천억원을 들여 외상센터를 세우고 중증외상 사망률을 개선하는 데 10년이 넘게 걸렸지만 이전으로 회귀하는 데엔 6개월도 걸리지 않았다”며 지속되는 의정갈등 사태와 정부의 행동을 비판했다.
허 교수는 “의정갈등 사태가 촉발된 2024년 2월부터 최대 1만명의 환자가 붕괴된 응급의료체계로 인해 초과 사망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초과 사망이란 충분히 살릴 수 있었지만 살리지 못했다는 뜻”이라며 “‘의료인 처단’이라는 계엄령은 그나마 자리를 지키고 있던 필수의료 의사를 내쫒고 지방의료 붕괴를 가속화시켰다”고 했다.
또 의료과실에 대한 형사처벌과 과도한 민사배상이 최근 1~2년간 국내 필수의료 의사를 병원 밖으로 내몰았다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고의나 중과실이 없을 경우 형사책임을 면책하거나 민사배상 상한선을 설정하는 것이 절실하나 최근 의료개혁특위에선 이런 노력이 모두 없던 일이 됐다”며 “환자를 살리기 위해 시행한 기관 내 삽관술 수가는 4만7000원인데 기관 삽관 후 사고 배상액은 5억원이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어떤 수술 생존률이 99%라고 판사가 못 박으면 살리지 못한 의사는 상해를 입힌 자와 똑같은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면서 “의료행위에 대한 민·형사상 소송을 남발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더 이상 의사는 생명을 다루는 분야에 종사할 이유가 없어졌고 이에 더 이상 젊은 의사들은 수련을 받지 않기로 한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무너진 지역·필수의료체계를 바로 세우는 방안으로 ‘의료소송 면책 특례 조항 도입’과 ‘2026년 의대생 선발 안식년 지정’을 건의했다. 허 교수는 “전공의는 피교육자 신분으로 병원 내 모든 의료행위는 교수의 감독 아래 이뤄진다. 단독으로 법적 책임을 질 이유가 없다”라며 “한 달에 월급 몇 푼 더 주고 근무시간 조금 줄여주는 것으론 수련을 포기한 전공의들을 되돌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교수들도 벼랑 끝에 서있다. 원가 이하의 수가로 식당과 장례식장을 넘어서는 매출을 만들려면 중간 착취자가 될 수밖에 없다”면서 “교육자로서 제자를 육성하는 데 헌신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짚었다.
대학 총장을 비판하며 2026학년도를 예외적으로 의대생 선발을 하지 않는 ‘의대생 선발 안식년’으로 정해 전격적으로 정원을 재조정해야 한다고도 했다. 현 상태로는 정상적 교육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허 교수는 “의대 정원 증원 과정에서 정작 교육의 주체인 교수들의 항변은 묵살 당했다. 경영 논리에 굴복한 대학 총장들만 앞장서고 동조했을 뿐”이라며 “새로운 교실을 짓는다더니 땅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7500명 수용은 불가능하다. 2026년도 정원을 재조정할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고 촉구했다.
끝으로 그는 “선의를 갖고 최선을 다한 진료는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처벌받지 않게 함으로써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점점 많아지길 바란다”며 “어린 새싹들이 의사가 되길 꿈꾸고 희망하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의료개혁임을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