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차 퇴출해도 전기트럭 안 산다”…환경부 조기폐차 지침 무용론

“화물차 퇴출해도 전기트럭 안 산다”…환경부 조기폐차 지침 무용론

올해 4·5등급 경유화물차 조기 폐차 확대 계획
전기트럭으로 신선도 유지 어려워 화물차주 고충
충전소서 냉동·냉장 기능 떨어져 품질 하락 우려
“다른 경유화물차 구매해 대기오염 개선 효과 미미”

기사승인 2024-08-01 06:00:04
화물차량의 배출가스를 점검하고 있는 모습. 부산항만공사 

대기오염 환경 규제 강화로 경유 화물차 폐차가 확대되는 가운데 정부의 정책이 제조사의 배만 불리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 폐차 뒤 전기 트럭 대신 또 다른 경유 화물차를 구매할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대기오염 개선 효과도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1일 업계에 따르면 환경부는 2024년 조기폐차 보조금 업무처리 지침을 통해 4·5등급 경유화물차 및 건설용 트럭에 대한 조기폐차를 본격 확대할 계획이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조기폐차 지원대상을 4등급 차량까지 확대하고 지원 물량을 당초 7만대에서 85000대로 늘린 바 있다.

문제는 물류·신선 식품을 취급하는 경유 화물차는 폐차 이후 전기 화물차로의 전환이 더디다는 점이다. 냉장·냉동식품을 운송할 경우 시동을 끈 상태로 충전해야 하는 전기화물차 특성상 신선도가 떨어지거나 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친환경 전환을 위한 정책이 또 다른 경유차의 구매를 유도하는 셈이다. 

30년째 화물차를 운행하는 최재열(가명)씨는 정부의 경유차 폐차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영업용 화물차 적용 시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토로했다. 

최씨는 “친환경 정책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화물차나 생계유지용 차들은 좀 더 보존해 줘야 한다”며 “생계유지도 어려운 기사들에게 또 새 차를 구매하게 하는 것은 제조사 배만 불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기 화물차의 경우 평균 40분 동안 80%만 충전된다. 충전소에 자리가 없으면 충전 시간 40분, 다른 차량이 충전되는 것을 기다리는 40분을 합쳐 80분을 소비해야 한다. 길거리에서 시간을 다 뺏기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화물차주 정민철(가명)씨는 시내에서 운행하는 화물차의 경우 주행거리가 짧아도 연식이 오래됐다는 이유 때문에 억지로 폐차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토로했다.

현재 도로 위에서 약 20년가량 운행 중인 5등급 경유차는 전국에 30만대(2024년 2월 기준)에 달한다. 이 중 서울에 4만5000대, 경기 8만8000대, 인천 2만2000대 등 절반 이상인 총 15만 5000대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화물차와 특수차(청소차, 견인차 등) 등 영업용으로 사용되는 차량이 약 69%를 차지한다.

정씨는 “주행거리가 60만~100만이 안되는데 연식 때문에 폐차해야 하는 차량이 많다. 멀쩡한 차를 폐차한 뒤 새로 구매해야 해 취등록세, 영업용 번호판 등의 지출이 상당하다”며 “화물차는 서울에서 부산을 하루에 왕복해야 하는데 전기차로 바꾸면 경제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신선 식품을 배송할 경우 전기 충전을 위해 시동을 끄면 냉장 냉동기가 작동이 안 된다. 충전을 2회 이상 한다고 가정하면 80분 동안 냉동 기능이 떨어져 운송 과정에서 신선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러한 이유로 경유차를 폐차한 뒤 전기 트럭으로 바꾸지 않고, 기존에 운행하던 것보다 더 큰 경유차를 구매해 보조금 지원도 못 받는 경우도 있다”며 “결국 자동차 회사만 좋은 일을 시키는 친환경 정책”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환경부 교통환경과 관계자는 “물류협회 등을 통해 모니터링하는 과정에서 전기 트럭 전환 시 위와 같은 어려움은 들은 바 없다”며 “온도 변화에 민감한 의약품의 경우 무리 없이 배송하고 있다. 4·5등급 경유차는 굉장히 노후한 차량이라 제도를 적용하고 있는 것”고 강조했다. 

이어 “운행 거리가 짧더라도 연식이 높으면 오염물질이 많이 배출된다”며 “폐차 기준을 운행거리가 아닌 연식으로 삼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조은비 기자
silver_b@kukinews.com
조은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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