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선 700만명, 벽을 허물기 위해선 [취재진담]

경계에 선 700만명, 벽을 허물기 위해선 [취재진담]

기사승인 2024-08-14 06:00:09
“IQ가 높으신가 봐요” 누군가에게 머리가 좋다는 말을 할 때 쓰곤 하는 말이다. 일부 사람들은 IQ(지능지수)가 높을수록 ‘공부를 잘하거나’ ‘똑똑하다’ 단정 짓는 경향을 보인다. IQ가 낮은 이들은 종종 공부를 포기해 버리기도 한다. 높은 지능에 대한 관심과 선망은 무한경쟁 승자독식이 드리운 한국 사회의 일그러진 면이다.

느린 학습자. IQ가 71~84 사이인 사람을 뜻한다. 지적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 있다고 해 ‘경계선’이라고도 불린다. 지적장애인은 아니지만, 지능이 평균보다 낮다. 또래에 비해 낮은 학습능력을 갖고 있고 대인관계 등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말 그대로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 있는 만큼 각종 교육과 복지 혜택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최근 첫 실태조사로 이들의 윤곽이 드러났다. 정부는 경계 구간에 해당하는 인구가 정규분포에 따라 697만명(13.6%)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결코 적지 않은 수다. 회색지대에 놓인 이들을 위한 자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일부 지자체에서는 경계선 지능에 따른 조례를 제정하고, 현황 파악에 나섰다. 서울시도 지난 5월 경계선 지능인 가족에 대한 맞춤형 지원책을 마련했다고 발표했다.

다만 경계선 지능이라는 개념의 모호성 때문에 이들을 위한 다양한 측면의 제도는 여전히 불안정한 실정이다. 일부 지자체와 교육청은 학습과 대인관계에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주로 아동과 자립준비 청년인 경계선 지능인 지원에 그친다.

경계선 지능 학생이라도 개별 학생마다 특성은 다를 수 있다. 학령별 실태조사와 개개인 특성별 적절한 지원이 절실하다. 실태조사 범위를 중‧고등학생으로 확대하고, 적합한 지도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수요에 비해 수용 가능 인원도 턱없이 모자란다. 학교 현장에서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전문 인력과 통합거점센터 마련도 필요하다.

이와 동시에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이해와 사회적 인식 개선도 요구된다. 느린 학습 능력과 주의력 결핍 등 이들이 겪는 인지적‧정서적 어려움은 행동 문제가 있다는 오해와 선입견을 형성할 수 있다. 경계선 지능인들이 선입견을 넘어 사회에서 존중받을 수 있도록 가정과 학교, 사회는 유기적으로 역할을 다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서 있는 경계인들이다” 지난해 방영된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마지막 대사다. 100명 중 14명. 쉽게 인정받지 못하는, 조금 느린 이들과 함께 걷기 위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다.
이예솔 기자
ysolzz6@kukinews.com
이예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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