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도 없는 지역 있는데…‘월 238만원’ 필리핀 이모에 몰린 강남 엄마들 [놀이터통신]

한 명도 없는 지역 있는데…‘월 238만원’ 필리핀 이모에 몰린 강남 엄마들 [놀이터통신]

기사승인 2024-08-15 06:05:03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할 필리핀 노동자들이 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 필리핀 가사도우미(가사관리사) 시범 사업에 선정된 10가구 중 4가구는 ‘강남 4구’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루 8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월 238만원을 지급해야 해 사실상 경제적 여유가 부족한 가구들은 신청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강남권에 수요가 몰린 것을 두고 씁쓸하다는 반응이 나옵니다. 특히 일부 엄마들이 돌봄·가사보다는 자녀의 영어 교육에 도움이 될지를 저울질하고 있다는 글이 퍼지면서, ‘돌봄 부담 경감’을 목표로 한 당초 취지와 차이가 있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15일 서울시에 따르면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신청한 751가구 중 157가구를 선정했습니다. 시는 지난달 17일부터 이달 6일까지 3주간 서비스 이용가정을 모집했습니다. 다른 시·도에서 신청한 2건과 중복신청 18건을 제외하면 총 731가구가 신청해 경쟁률은 약 5대 1에 달했습니다. 

이용가정은 한부모, 맞벌이, 다자녀, 임신부를 우선으로 합니다. 선정 결과 지역별로는 동남권(서초·강남·송파·강동)에서 59가구(37.6%)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이어 도심권(종로·중구·용산·성동·광진·서대문·동대문) 50가구(31.8%), 서북권(은평·마포·양천·강서) 21가구(13.4%), 서남권(구로·영등포·동작·관악) 19가구(12.1%), 동북권(중랑·성북·노원·강북) 8가구(5.1%) 순이었습니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선정 비중이 10%를 넘긴 곳은 서초구와 강남구가 유일합니다. 금천구와 도봉구는 1가구도 선정되지 않았습니다. 

신청가구부터 서초구(100가구)와 강남구(120가구)는 타 자치구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입니다. 강남4구 총 신청건수는 341건입니다. 도심권 신청을 총 합해도 177건, 서남권은 89건, 서북권은 87건, 동북권은 37건에 불과한데 말이죠. 

필리핀 가사관리사의 월 이용 금액이 238만원(주 5일 하루 8시간)점을 감안할 때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강남 4구의 신청이 몰린 것으로 풀이됩니다. 지난해 4분기 월평균 가구소득이 502만3718원이라는 점을 비교하면, 필리핀 가사관리사 월 이용금액은 평균 가구소득의 절반 정도에 달합니다. 중·저소득층 가구에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죠. 

일부 가정에선 볼멘소리가 나옵니다. 생후 6개월, 3살 아이를 키우며 육아휴직 중인 임모씨는 “어린 자녀들을 하루 종일 돌보는게 정말 힘들긴 해도 가사 관리 비용으로 월 238만원은 너무 부담스럽다”며 “사실상 소득이 높은, 강남 지역만 이용 가능한 서비스인가. 돌봄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지원하고자 한 취지에선 엇나갔다고 본다”고 지적했습니다. 서울 양천구 거주 워킹맘 윤모씨도 “맞벌이로 살아가기도 너무 빠듯하다”며 “아무리 저렴하다고 해도 월 119만원(하루 4시간)이나 가사도우미는 못 쓰겠다”고 말했습니다. 

해외와 비교해서도 비싸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가 정착된 홍콩에서 주 5일 하루 8시간을 고용하는 경우, 월 최소 77만원, 싱가포르는 40~60만원을 지급합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지난 3월 SNS를 통해 “외국인에게도 최저임금이 적용되면 ‘외국인 가사 도우미’는 대부분의 중·저소득에 그림의 떡이 될 것”이라며 “결국 비용이 장벽”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오 시장은 지난해 서울시 국정감사에서도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 효과를 보기 위해선 이용료가 월 100만원정도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고요. 

‘서울시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이용가정 신청 및 선정결과. 서울시

더욱이 강남권 엄마들이 필리핀 가사관리사에 대해 돌봄, 가사 서비스보다 자녀의 영어교육에 더 관심을 둔다는 글이 퍼지면서 실효성 논란까지 커지고 있습니다. 실제 여러 맘카페에 “필리핀 가사도우미가 영어 교육이 도움이 될까”라고 묻는 글이 적지 않게 올라왔습니다. 양육 부담을 낮추기 위해 시작된 외국인 가사관리사 정책이 본 사업도 전에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전문가는 이 같은 시스템이 잘 정착하기 위해선 이용자와 가사관리사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임동진 한국이민정책학회 회장(순천향대 행정학과 교수)은 “가사관리사를 쓰는 건 상대적으로 잘 사는 국가들”이라며 “통상적으로 최저임금이 있는 국가의 경우, 최저임금을 적용하게 돼 있다. 싱가포르의 경우 최저임금제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고용·직업상 차별을 금지한 UN 산하기구 국제노동기구(ILO) 111호 협약에 따라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차등지급할 수 없습니다. 

임 회장은 “다만 국가 간 임금 차이가 상당하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며 “필리핀, 태국 일반 근로자의 한 달 월급은 약 30~50만원정도다. (자국 임금수준 봐 온 시각에서) 한국에서 월 100~150만원 버는 것에도 만족도가 높을 수 있다. 한국인 시각으로 (임금 테이블을) 봤을 때 ‘차별’이라는 이유로 (해당 국가의 몇 배가 되는) 월급 200만원을 준다는 것은 타당한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현재는 결국 돈 있는 사람이 쓸 수 있는 제도다. 외국인 가사관리사에도, 우리 국민에게도 도움이 되기 위해선 이용 가격대가 맞아야 한다. 노동시장에 의해 서로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제도가 운영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라고 했습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임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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