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의료붕괴’ 온다”…응급실 긴장감 고조

“9월 ‘의료붕괴’ 온다”…응급실 긴장감 고조

기사승인 2024-08-28 06:00:06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 안으로 의료진이 들어가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의료붕괴를 겪게 될 것이다.”


병원 응급실 곳곳에서 비상신호가 울린다. 의료계는 오는 9월, 의료현장에 최대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27일 의료계에 따르면 6개월 넘게 전공의 공백을 메워온 의료진이 버티지 못하고 잇따라 의료현장을 이탈하고 있다. 건국대 충주병원 소속 응급의학과 전문의 7명 전원은 지난주에 “이달까지 근무하고 병원을 그만두겠다”며 사의를 표했다. 교대로 24시간 응급실을 지켜왔지만, 의료공백 장기화로 인해 신체적·정신적 부담이 커져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사직을 결심한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충주의 지역응급의료센터는 건국대 충주병원과 충주의료원 2곳뿐이다.

응급실 위기 상황은 확산된 상태다. 지난 23일 아주대병원의 응급의학과 전문의 14명 가운데 절반인 7명이 사직서를 냈다. 세종충남대병원은 이달부터 응급실을 축소 운영하고 있다. 응급실 병상을 줄여나가는 병원도 늘어간다. 지난 22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응급실 병상 축소 기관은 전체 408개소 중 6%인 25개소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를 보면 전공의들이 이탈하기 전인 2월21일 기준 응급실 병상을 축소한 병원은 6곳에 불과했다.

서울 대형 병원들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 서남권 권역응급의료센터인 이대목동병원의 남궁인 응급의학과 교수는 지난 23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하루 60명 정도를 진료하는 서울 한복판 권역응급센터에서 혼자 근무한다”고 전했다. 남궁 교수는 “올해 초 허리 디스크가 터졌고 지난달부터는 오른쪽 눈이 잘 안 보인다. 목 뒤 근육 상태가 나빠진 뒤론 오른쪽 팔도 저리다”면서 “한 달도 못 버틸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어느덧 6개월이 넘었다. 응급의료체계의 붕괴는 이미 확정됐다. 일말의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의료진 이탈에 따른 파행 운영이 이어지면서 응급실의 ‘365일 24시간’ 원칙은 깨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응급의료 담당기관 중 최상위에 속하는 전국 권역응급의료센터 44곳 중 10여곳은 폐쇄될 수 있단 전망이 나온다. 권역응급의료센터들은 ‘통합응급의료정보 인트라넷’을 통해 인력 공백으로 인해 환자 수용과 진료가 어렵다는 메시지를 잇달아 전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27일 주중 낮에만 뇌출혈, 뇌졸중, 외상 등 신경외과 진료가 가능하고 주중 야간, 주말, 공휴일엔 응급실 수용이 불가능하다고 알렸다. 고려대 안산병원은 안과 내부 사정으로 응급수술이 어렵다고 통보했다.

통합응급의료정보 인트라넷. 경북대병원 상황판 캡처

비수도권 권역응급의료센터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대구 경북대병원은 26일 호흡기내과, 안과, 성형외과, 정신건강의학과, 피부과, 마취통증의학과, 이비인후과, 신경과, 신경외과, 산부인과, 치과 응급실 진료가 의료진 부재 등의 이유로 불가하다고 밝혔다. 같은 지역 영남대병원 역시 환자를 볼 의료진이 없어 소화기내과, 성형외과, 비뇨기과, 호흡기내과, 피부과, 외과, 치과, 소아청소년과, 감염내과, 이비인후과, 신경과 진료가 제한된다고 공지했다. 안과는 각막화상, 급성 녹내장발작, 소아 안와골절, 중증 안내염 환자만 수용 가능하다고 통지했다.

응급실 의료진이 이탈하고 병상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119구급차를 타고 거리 위를 전전하는 환자들의 안타까운 사례가 이어진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쓰러진 40대 응급환자가 병원 14곳을 돌다 구급차에서 숨을 거뒀다. 지난 15일엔 충북 진천에서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가 응급실을 찾지 못해 구급차 안에서 아이를 낳았다. 9일 서울 구로역 사고 부상자는 치료할 의사를 찾지 못해 16시간가량 응급실을 찾아 헤맸다. 소방당국의 ‘119구급대 재이송 건수 및 사유 현황’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119구급대의 재이송 2645건 중 40.86%(1081건)에 이르는 사유가 구로역 사고와 같은 ‘전문의 부재’였다.

환자들은 “치료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진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사고를 당한 부상자가 응급실을 찾기 위해 긴 시간을 돌아다니다가 사망했다는 언론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현실은 환자들에게 큰 공포로 다가오고 있다”라며 “응급실 문제는 계속 불거지는데 의료계도, 정부도 마땅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답답할 따름이다”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으로 환자가 이송되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응급실 의사들은 추석 연휴가 껴있는 오는 9월이 ‘최대 고비’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통상 명절 연휴엔 응급실 환자가 2배 가까이 늘어난다. 복지부에 따르면, 2022년 추석 연휴(9월 9~12일) 기간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 166곳의 환자 내원 건수는 약 9만건이다. 하루 평균 약 2만3000건으로 평소의 1.9배 수준이다. 추석 연휴 사고의 경우 화상이 3배, 관통상이 2.4배, 교통사고가 1.5배까지 증가한다.

강원도 상급종합병원 응급의료센터에서 근무 중인 응급의학과 A교수는 “지금도 상황이 심각한데 9월엔 지금보다 더 큰 위기가 올 것이 자명하다”면서 “추석 연휴에 환자들이 갈 수 있는 병원이 마땅치 않아 쓰나미처럼 밀려들어올 텐데 그때는 정말 대책이 없다”고 짚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지난 26일 기자들과 만나 “최근 일부 응급실에서 단축 운영 사례가 발생하고 있지만 관리가 가능한 상황”이라고 밝힌 데 대해선 “현장 상황이 심각한 걸 정부만 모른 척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응급의료 위기가 커지자 정치권에서도 현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24일 자신의 SNS에 “의료가 무너져 국민 생명이 위험에 처한 이 상황보다 더 위급한 일이 어디 있는가”라며 “한 사람의 고집과 오기 때문에 사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이대로 흘러간다면 그 파국의 결과는 끔찍할 것”이라고 전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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