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시대 ‘다둥이 가정’으로 산다는 건 [1+1=0.6명⑤]

저출산 시대 ‘다둥이 가정’으로 산다는 건 [1+1=0.6명⑤]

양육 때 가장 큰 어려움 ‘경제적인 부담’
각종 제한에 정부 지원 못 받은 경우 多
자녀 전 생애에 걸친 현실적 정책 필요

기사승인 2024-09-24 06:05:06
합계출산율 0.6명대를 목전에 뒀다. 장기간 이어진 초저출산 현상은 우리 사회의 역동성과 지속가능성을 저해하고, 국가 존립 기반마저 위협하고 있다. 저출생 해법을 찾는데 온 사회가 골몰하고 있지만 돌파구가 보이질 않는다. 아이를 낳고 싶은 사회는 무엇일까.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는 가정은 저출생 문제 해결의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했다. -편집자주-

사진=임지혜 기자

#“아침부터 전쟁이에요. 큰아이 둘은 학교 갈 준비로 정신없고 막내딸은 그 뒤를 따라다니며 소리치고요.” 세 자녀를 키우는 김모(40)씨의 집은 매일 작은 축제 현장이다. 퇴근 후 가족이 모두 모이는 저녁 시간은 더 시끌벅적하다. 세 아이가 음악을 틀고 춤을 추기 시작하면 거실은 공연장이 된다. 아이들의 코믹한 춤에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가끔은 너무 시끄러워서 귀가 멍할 때도 있는데 아이들 덕분에 힘든 일을 잊어요.”

인구감소가 가장 빨리 진행되는 나라, ‘국가 소멸론’까지 거론될 정도로 심각한 저출생 문제를 겪는 한국에서 김씨와 같은 다자녀 가정은 어디서나 귀한 존재가 됐다. “와, 애국자네요”라는 말을 자주 듣지만, 다자녀 가정이 임신과 출산, 양육에 힘쓸 수 있었던 건 ‘애국’이라는 거창함보단 가족이 함께 만드는 일상의 순간들이다. 

‘아이가 좋아서’ ‘책임감 때문에’ ‘혼자는 외로울 것 같아서’ ‘일상의 소소한 행복’ 등 임신·출산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다양하다. 아이들이 서로 협동하고 함께 어울려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행복감을 느낀다는 건 다자녀 가정이 꼽는 공통된 장점이다.

“4남매로 자란 저도 다자녀 부모가 됐어요. 가족이 많으면 시끄럽긴 하지만 집에 사람냄새가 돌아요. 성인이 되고 보니 형제자매가 많은 것에 좋은 점이 많다고 느끼고요. 그래서 임신·출산에 거부감이 별로 없었어요.” (10세·8세·3세 세 자녀를 둔 김모씨, 43세·여) 

“첫째 아이가 중학생일 때 외동인 친구가 편의점에 가서 1+1 행사 상품 중 하나를 주며 ‘1+1 물건을 사서 나눠 먹는 걸 해보고 싶었어’라고 말했다고 해요.  ‘형제가 많은 것이 어떤 점에서 좋은지’ 물어보기도 하고요. 제 아이는 ‘일단 심심하지 않고, 이렇게 뭐든 나눌 수 있으니 좋지‘라고 그 친구에게 말했다는 일화가 생각나네요. 아이들 스스로 친구들에게 이런 선한 영향을 주는 사람으로 성장했다는 점이 참 뿌듯해요.” (대학 1학년·고2·중3 세 자녀를 둔 구모씨, 50세·여)

그래픽=윤기만 디자이너

지원 있다는데…'경제적 부담' 큰 다자녀 가정 "월급은 항상 마이너스"


물론 다자녀를 키운다는 건 쉽지 않다. 아이의 탄생과 함께 책무와 일거리가 늘어난다. 입이 늘어나니 식비, 각종 생활비 등 경제적 부담도 더해진다. 저출생 문제로 다자녀 인정 기준이 2명으로 완화되고 각종 지원 정책이 확대됐다. 그럼에도 피부로 와닿지 못한 부분이 많다. 

쿠키뉴스 인터뷰에 참여한 세 자녀 이상 다자녀 가정 7팀 모두 ‘경제적인 부담’을 양육할 때 가장 큰 어려움으로 지적했다. 셋째 임신 사실을 알고 소득 등 현실적인 어려움의 벽 앞에서 출산을 고민했다고도 입을 모았다. 10세·7세·4세 자녀를 둔 정모(40대)씨는 “의식주 비용(교육비 제외)이 많이 든다. 아이가 없었다면 월급 절반 이상을 저축할 수 있는데, 자녀를 양육하다보니 대출은 연봉의 2배가량이 됐고, 월급은 항상 마이너스라 부업이나 알바를 병행하지 않으면 생활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다자녀를 기르는 데 대해 주변에선 ‘정부에서 지원을 많이 해주지 않느냐’고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자녀가 많을수록 큰 평수 집이 필요하고 큰 차량이 필요한데 소득 기준, 면적 제한 등 각종 제한에 걸려 지원을 받지 못하고 밀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컨대 신생아 특례대출은 국민주택규모(전용면적 85㎡) 이하에만 적용돼 다자녀 가정 사이에선 ‘그림의 떡’이란 반응이 대다수다. 

정씨는 “다자녀 지원으로 월 1만6000원가량의 전기세 감면받는데, 아이가 없으면 전기를 적게 썼을테니 지원이라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고 말했다. 중2·초5·7세 세 자녀를 둔 김모(39)씨도 “전기세, 공영주차장 할인 등 약 월 10만원 내로 지원받는 것 같다”며 “일반적인 가정이면 도움이 되겠지만, 다자녀 가정이 매월 기본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경제적인 규모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낀다”고 했다.

다자녀 지원에 대한 정보가 충분치 않다는 지적도 있었다. 7세·2세·1세 자녀를 둔 이모(36세)씨는 “지자체별로 차이는 있지만 다자녀 지원이 있는 건 알고 있다”며 “출산 축하금이나 양육지원금 외 특별한 지원금을 받고 있지 않는데, 사실 어떤 지원이 있는지 알지 못한 것도 크다. 출생 신고 시 주민센터에서 안내받은 정보가 전부”라고 말했다. 

그래픽=윤기만 디자이너

아이 키우기 좋은 사회가 아이를 낳고 싶은 사회


다자녀 가정들은 ‘아이 키우는 가정이 살기 좋은 사회가 아이를 낳고 싶은 사회’라고 입을 모은다. 지금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의 한숨이 커질수록 미래 아이를 가져야 할 사람들이 임신·출산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쿠키뉴스가 여론조사기관 위드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월25일부터 9월1일까지 전국 거주 만 18~59세 2000명을 대상으로 ‘저출생 문제 인식’을 온라인 설문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19%p)한 결과 ‘아이가 있는 화목한 가정의 모습이 결혼과 출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까’란 질문에 80%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보통이다’는 12%, ‘전혀 그렇지 않다’는 8%다. 

다자녀 가정들은 전 생애에 걸친, 현실적인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 자녀를 둔 워킹맘 김씨는 “현재는 미취학 유아 지원책에 치우쳐 있다. 어린이집·유치원에서 비교적 돌봄이 가능한데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상황이 달라진다. 초등 저학년은 여전히 돌봄이 필요한데, 신청 아이가 많다는 이유로 학교 돌봄교실에서 떨어지고 국가에서 지원하는 돌봄센터를 찾아가면 등하원을 부모가 직접해야 한다. 직장에선 이런 모든 상황을 배려해 주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자녀 수에 비례한 지원책 △자녀 양육비 간접세 환급 △세제 혜택 등을 다자녀 가정에 필요한 지원으로 꼽았다. 

다만 전문가는 다자녀 정책 지원 확대의 필요성에 대해 사회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혜정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박사는 “‘나도 (정책에) 해당할 때’ 그 정책은 긍정적 호응을 얻는다”며 “다자녀 가정 등 특정 대상만을 지원하면서 ‘언젠간 너희에게도 좋을 것’이란 메시지를 주는 것은 사실 (청년들에게) 너무 먼 미래이다. 오히려 역차별로 느끼는 등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임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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