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억원을 호가하는 혈우병 B형 유전자 치료제가 국내 허가를 받은 가운데, 급여 적용 여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초고가 의약품에 해당될 뿐 아니라 장기 안전성 및 효과성 데이터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위험분담제 적용 가능성이 제기된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CSL베링코리아는 혈우병 B형 유전자 치료제 ‘헴제닉스’(성분명 에트라나코진 데자파르보벡)의 건강보험 급여를 준비하고 있다. 이르면 내년 상반기 급여 신청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헴제닉스는 혈액응고 제9인자 억제인자가 없는 성인의 중등증 및 중증 B형 혈우병 치료제로, 지난 13일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다. 헴제닉스는 환자 인체 내에서 스스로 제9인자를 생성하게 만들어 장기간 지속적으로 출혈을 감소시키는 유전자 치료제다. 기존 치료제들은 평생에 걸쳐 주기적으로 투여해야 하는 반면, 헴제닉스는 단 1회만 주입해도 장기간 효과가 지속돼 원샷 치료제라고도 불린다.
다만 가격적 부담이 크다. 현재 헴제닉스는 미국에서 1회 투여 시 350만 달러, 한화로 약 46억원으로 책정돼 있다. 초고가 약제인 만큼 프랑스와 덴마크, 영국 등 유럽 국가에서는 헴제닉스를 일부 급여 지원 형태로 지원하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보건기술평가기관(CADTH)의 약물 전문가위원회(CDEC)가 헴제닉스의 공공 처방 목록 등재(급여 지원)를 권고하기도 했다.
국내 업계는 정부가 이번 유전자 치료제에 대해 급여를 추진할 것으로 예측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해당 치료제는 급여가 아니면 비용을 감당하기 매우 어렵다. 이미 유럽 등에선 급여로 제공하고 있다”며 “주기적으로 투여해야 하는 기존 치료제와 비교했을 때 효과나 치료비용 측면에서 우월하다는 점이 반영된다면 졸겐스마처럼 ‘위험 분담제’ 계약 하에 급여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언급했다.
앞서 2022년 8월 국내에서도 유전자 치료제 급여를 적용한 선례가 있다. 한국노바티스의 척수성 근위축증 유전자 치료제 ‘졸겐스마’(성분명 오나셈노진아베파르보벡)가 급여 문턱을 넘었다. 졸겐스마 역시 20억원에 달하는 고가의 의약품으로, 보험약가는 19억8172만원으로 결정됐다. 환자본인부담은 598만원이며, 나머지는 건강보험 재정으로 충당한다.
단 정부는 급여 적정 관리를 위해 △환급형 △총액제한형 △환자 단위 성과기반형 등 3가지 위험 분담제 유형을 계약 조건에 명시했다. 약제의 효능, 효과나 보험 재정 영향 등에 대한 불확실성을 업체가 일부 분담하도록 한 것이다.
노바티스는 5년 동안 환자의 반응을 주기적으로 평가하고, 급여 등재 4년차에 졸겐스마의 유용성 및 비용 효과성에 대해 재평가를 받아 약가 조정, 환급률 변경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지난 3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개한 졸겐스마주 성과 평가에 따르면 총 20건의 사례 중 19개 사례가 의미 있는 개선을 나타냈고, 노바티스 측은 안정적으로 급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올해 초 급여 인정을 받은 한국노바티스의 유전성망막질환 유전자치료제 ‘럭스터나’(성분명 보레티진네파보벡)도 위험분담제 적용을 받았다. 럭스터나는 양쪽 눈 투여 시 상한금액이 6억516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건강보험 적용으로 환자는 1050만원(본인부담상한액 적용 시)만 부담하면 된다. 대신 노바티스는 럭스터나 치료를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4년간 투약 반응 및 효과를 평가해야 한다.
이들 사례에 비춰보면 헴제닉스도 위험분담제를 적용할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현재 국내에서 급여가 인정된 졸겐스마와 럭스터나 모두 위험분담제가 반영됐다”며 “CSL베링코리아 역시 비슷한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내 환자 수, 투여 대상 등에 따라 급여 금액과 환자본인부담률이 어떻게 책정될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부연했다.
심예지 계명대동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현재 시중에 나와있는 혈우병 유전자 치료제는 1회 투여만으로 장기간 약효가 지속되는 혁신 치료제로 알려져 있지만 아직 장기 안전성 데이터가 부족하고, 간에 부작용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며 “소아 환자보다는 성인 환자에서, 또 기존 치료들로는 출혈이 멎지 않는 중증 환자에게 투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급여가 되더라도 적용 가능한 환자 기준을 까다롭게 설정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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