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은 선택할 수 있는 치료제가 극소수에 그친다. 신약이 국내에 도입되더라도 급여가 되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린다. 희귀질환은 치료제 유무가 생명과 직결되는 만큼 신속한 급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기다릴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치료제의 급여화를 간절히 바랍니다.” 3년 전 폐섬유증 진단을 받은 희귀질환자 A씨는 24일 국회의원회관 제4간담회의실에서 열린 ‘희귀질환 의약품 접근성 개선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이 같이 호소했다.
A씨는 “폐 기능이 25%까지 떨어지자 의사는 비급여 ‘오페브’를 써야한다고 했다”며 “빨리 쓰면 폐 기능을 높게 유지할 수 있었지만, 월 300만원이나 되는 약값 탓에 의사도, 환자인 저도 쉽게 결정하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폐섬유증 치료제인 ‘오페브’(성분명 오페다닙)는 지난 2016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첫 품목허가를 받았지만 8년째 급여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폐섬유증은 폐 손상으로 인해 폐섬유화가 만성적으로 진행되는 희귀질환이다. 평균 기대 여명이 약 3년으로, 암 사망률 1위 폐암보다 낮은 생존율을 보인다.
A씨는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나이에 투병 생활이 길어져 장성한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때로는 자괴감과 우울감으로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다”며 “돈 없으면 죽는다는 말을 실감한다. 생존 기간이 5년도 안 되는 중증 질환인 만큼 정부 관계자들이 의지를 갖고 급여화에 힘써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전문가들도 폐섬유증을 비롯한 희귀질환들의 치료 옵션이 매우 적다며 급여 필요성에 공감했다.
송진우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희귀질환 치료제는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매우 한정적이다. 따라서 급여 평가 시 비용효과성을 검토할 때 질환 특성을 고려해 신약 가치를 적합하게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비가역적으로 장기 기능이 악화돼 서서히 사망하는 질환의 치료제인 경우 현재의 경제성평가로는 그 가치를 적절히 평가하기 어려워 사각지대로 여겨진다”고 지적했다.
유승래 동덕여자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는 “우리나라 총 약품비 대비 신약 관련 지출은 13.5%로, 경제협력기구(OECD) 국가와 비교해 턱없이 낮다”며 “국내 희귀의약품 신약 약제 수와 약품비도 비희귀의약품에 비해 떨어진다. 이는 희귀의약품에 대한 정부의 관심도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걸 방증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요국과 비교해 국내 신약 도입 현황, 총 약품비 내 신약 지출 비중 격차를 감안해 질병 부담이 큰 질환을 중심으로 보장성을 강화하는 재정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치료제 급여화를 추진해야 한다”며 “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한 경제성평가(ICER)의 탄력적 적용, 위험분담제 적용 확대가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선혜 쿠키뉴스 기자는 “프랑스, 독일, 일본 등 다른 선진국 대비 국내에선 희귀질환 치료제의 도입부터 급여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 환자들이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희귀질환자들과 정부가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고 경제성평가 시 환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국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관리실 실장은 “정부는 허가·급여·약가 협상 연계 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2차 시범사업 약제 선정을 앞두고 있다”며 “조금 더 빨리 필요한 약을 도입하고 쓸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희귀질환 치료제 급여 평가에 있어 문제점을 보완해 나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현재 오페브도 급여 평가 중이다.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