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자체가 행복, 최선 다해 사는 사람들”…‘베니’가 보여주는 희귀질환자의 삶 [쿠키인터뷰]

“존재 자체가 행복, 최선 다해 사는 사람들”…‘베니’가 보여주는 희귀질환자의 삶 [쿠키인터뷰]

“그림 그리며 세상과 소통” 구경선 작가 인터뷰
어셔증후군 환자의 삶, 캐릭터 ‘베니’에 투영
“희귀질환 편견 여전”…인식 개선 캠페인 전개

기사승인 2024-10-27 06:00:08
구경선 작가는 최근 쿠키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토끼 캐릭터 ‘베니’를 통해 전하는 희귀질환자의 삶, 앞으로 그려질 희망 등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한국아스트라제네카

큰 귀에 작고 귀여운 눈을 가진 토끼 캐릭터 ‘베니’(BENNY). 그저 평범한 토끼처럼 보이지만 실은 희귀질환인 어셔신드롬을 앓고 있는 구경선 작가의 또 다른 모습이다. 3살 때 청력을 잃고, 현재는 시력도 점점 사라져가는 구 작가를 대신해 베니는 세상의 목소리를 듣고 그녀의 이야기를 전한다. 

구 작가가 베니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희귀질환자들의 삶’이다. 희귀질환자에 대해 ‘마냥 아프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편견을 깨고자 한다. 일상을 살아가는 베니의 모습 속에서 남들과 같이 일상을 누비고 꿈을 꾸는 희귀질환자의 하루하루를 담는다.

얼마 전 구 작가는 인식 개선 캠페인에 직접 뛰어들었다. 자신의 그림으로 희귀질환을 겪는 환자 또는 그 가족의 이야기를 보여주기로 했다. 환자와 가족이 마주하는 사회적 편견과 그로 인한 어려움을 공감하고 함께 극복하자는 취지다. 쿠키뉴스는 최근 구 작가를 만나 베니의 여정과 함께 캠페인에 담긴 염원을 들어봤다.   

Q. 어셔신드롬을 앓고 있다는 걸 언제 알게 됐나

병명을 알게 된 게 2012년이었어요. 어셔신드롬의 가장 흔한 유형이 청각장애가 먼저 시작되고 야맹증이 찾아오면서 시야가 서서히 좁아지는 건데요. 이러한 질환이 있다는 사실을 30대가 돼서야 알았어요. 둔감한 편이라 시야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지냈어요. 

친구가 걱정스럽게 말을 건네더군요. 병원에 가보라고요. 당시만 해도 ‘에이, 난 아닐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검사 결과 제게 망막색소변성증(Retinitis Pigmentosa, RP)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단순한 청각장애가 아니었던 거죠. 사람마다 실명 속도가 다른데, 감사하게도 저는 아직 시야를 10년 넘게 유지하고 있어요.

Q. 베니는 어떻게 탄생하게 됐나

어렵게 붙은 고등학교를 일찍 그만두고 세상으로 나갔지만, 나이는 어리고 경력도 없었죠.게다가 장애인을 받아주는 곳은 더 찾기 힘들었어요. 다른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커졌고 네일아트로 방향을 바꿨어요. 열심히 연습해서 대회에서 상을 받았어요. 취직도 했는데 소통이 어려워서 2주 만에 해고됐어요.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좌절을 여러 번 했죠.

그때부터 그림을 그렸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그림뿐이었거든요. 어떤 캐릭터를 만들지 고민하면서 이 책 저 책을 살폈고 두꺼운 동물 백과사전까지 보게 됐어요. 그 책을 넘기다가 토끼 그림을 보고 멈췄어요. 귀여운 모습이 눈길을 끌었고, ‘동물 중 가장 청력이 뛰어나다’라는 설명이 마음에 와닿았어요. 현실 속 제 바람이 겹쳐졌던 것 같아요. ‘네가 내 대신 많이 들어줬으면 좋겠다’라는 간절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렇게 캐릭터 ‘베니’가 나왔습니다.

캐릭터 베니와 함께하는 희귀·난치성질환 인식 개선 인스타툰 캠페인 포스터.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Q. 희귀질환 인식 제고 캠페인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나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한국아스트라제네카와 함께 희귀질환을 알리고자 진행한 캠페인인데요. 제가 겪고 있는 어셔신드롬을 비롯해 5개 희귀질환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인스타툰을 제작하고 있어요. 제 캐릭터인 베니를 통해 환자 혹은 가족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정보가 넘쳐흐르는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희귀질환을 둘러싼 편견은 여전해요. 사라지지 않았어요. 희귀난치병을 가진 사람들은 가족마저 모르는 외로움을 갖고 있어요. 가족 역시 알아주지 않는 세상과 홀로 싸우고 있어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 조용하지만 치열하게 사는 환자와 그 가족이 많다는 걸 꼭 알리고 싶었어요. 

Q. 그림을 통해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저는 어셔신드롬 환우로서 언제 실명할지 모른다는 물음표를 안고 일상을 살아가고 있어요. 가끔 상상을 해요. ‘이미 소리를 듣지 못하는데, 눈도 안 보이게 된다면 그 때는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을까’ 하면서요. 무엇보다 같이 살고 있는 남편에게 짐이 될 것 같더라고요. 만나는 사람마다 제 남편에게 고생이 많다고 그러거든요. 그럼 저는 미안한 마음이 불쑥불쑥 튀어나와요. 한 때는 실명을 하게 되면 안락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몰래 알아보고, 속으로 준비했어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짐이 된다는 느낌 자체가 너무 싫거든요. 

어느 날 깨달았어요. 제 남편에게 저는 ‘짐’이 아니라, ‘행복’이라는 걸요. 남편은 저와 맛있는 걸 먹고, 재밌는 걸 보고, 소소한 이야기를 종알종알 나누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하다고 해요. 제 병과 장애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제 자체를 사랑하는 거였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조금 뻔뻔하게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환우분들께도 전하고 싶어요. 당신 자체가 사랑이고 행복이라고요.

환우의 가족들도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노력을 해요. 자신의 삶보다 환우의 삶을 우선에 두고 희생을 감수해요. 가족 입장에서는 환우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무너질 것 같고 아플 겁니다. 가끔 노력 만큼 환우가 잘 따라와 주지 않으면 야속하고 서운한 감정도 들겠죠. 그러나 걱정하지 마세요. 환우가 정말 힘을 내고 있다는 것만 알아주세요. 그리고 환우의 가족이라서 존경스럽고 감사드린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Q. 인생을 살아가며 새로운 시도를 하는 환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저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편입니다. ‘나는 왜 두려워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조금 알겠더라고요. 이미 너무 많이 실패했기 때문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뭐든 도전을 했다가 실패하면 엄마는 언제나 웃으며 말씀하셨어요. “도전했으니 됐어. 너무 잘 했어. 도전하면서 많이 배웠잖아. 그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해”라고요. 그럴 때마다 저는 실패가 부끄럽기보단 오히려 으쓱해졌던 것 같아요. 

결과는 실패지만, 그렇게만 끝나진 않아요. 실패를 한다는 것도 굉장한 거예요. 실패를 할까 봐 하고 싶은 걸 망설이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결국 좋은 결과가 올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당신에게 또 다른 길이 열리는 멋진 과정이 될 수 있어요. 하고 싶은 일을 꼭 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한국을 넘어 조금씩 세상을 넓혀가면서 오래오래 사람들의 마음에 남는 그림을 그리는 목표를 갖고 있어요. ‘나도 할 수 있다. 그러니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라는 걸 보여주는 사람이 되는 게 꿈입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박선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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