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버스정류소 흉내’ 스마트쉼터…서울시·자치구, 안전 놓친 엇박자 행정

[단독] ‘버스정류소 흉내’ 스마트쉼터…서울시·자치구, 안전 놓친 엇박자 행정

버스정류장 20m 이내 스마트쉼터 183곳
‘건축물’ ‘공유재산’ 등 개념 모호해 권한 상충
시민 안전 위한 예산 지원 및 제도적 보완 필요

기사승인 2024-11-11 06:00:08
서울 강남구의 한 버스정류소 옆 스마트쉼터와 차도까지의 거리가 1.2m에 불과하다. 사진=임지혜 기자 

서울시 자치구들이 버스정류소 인근에 ‘스마트쉼터’를 늘리고 있는 가운데 일부 스마트쉼터는 보행자, 대중교통 이용객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설치돼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관련 기관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19개 자치구에 버스정류장 20m 이내 스마트쉼터 183곳이 설치돼 있다. 이와 관련 관련 정보공개를 청구한 시민 제보자 이모씨는 “버스정류소 지역은 어디든 이용자의 시야를 방해하는 시설이 있으면 안 된다”며 “서울시는 (자치구에) 스마트쉼터를 설치하고 싶으면 버스정류소 전후 20m 이격을 하라고 요구하는데 지키는 곳이 없다”고 밝혔다.

앞선 기사 ‘“버스정류장 아닙니다” 스마트쉼터 이면…1m에 선 사람들’에서 기자가 찾은 서대문구, 강남구, 강서구 등에 설치된 일부 스마트쉼터는 버스정류장과 1.4~4m가량 떨어져 있었다. 스마트쉼터와 도로 사이에 공간이 없도록 도로 면에 바짝 붙인 쉼터도 있었지만, 일부 스마트쉼터는 1.2~1.6m가량 차도와의 사이 좁은 공간에 대중교통 이용객이 몰려 서 있었다. 버스를 타려던 한 승객은 좁은 공간에서 서둘러 달리다 정차 중인 버스에 부딪힐 뻔하기도 했다. 또 일부 스마트쉼터는 버스정류장의 대중교통 이용 시민들의 시야를 가리는 위치에 설치돼 불편을 초래하기도 했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버스정류장 인근 스마트쉼터. 사진=임지혜 기자

버스정류장 스마트쉼터 늘어나는데…명확한 지침 없어 


자치구는 시민 편의와 수요로 인해 스마트쉼터를 버스정류소 옆에 설치했다는 입장이다. 양천구 관계자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기 때문에 정류장 주변을 택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구 관계자는 “성동구, 관악구, 중구 등 자치구에서 많이 만들고 있다”고 했다. 서대문구 관계자는 설치 기준으로 “도로 보도 폭이 5m 이상은 돼야 하고, 유동인구가 많아야 한다. 또 건물주나 상가주의 동의가 필요해 설치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일단 ‘스마트쉼터가 무엇인가’ 개념부터 명확지 않다. 일부 자치구는 스마트쉼터를 공유재산이 아닌 ‘도로 부속 시설물’로 보고 있어 시청의 허가가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서울시는 ‘공유재산’으로 판단했으며, 국토교통부는 ‘주민공동시설인 건축물’로 보고 있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변호사는 “스마트쉼터는 공유재산이고, 건축물로도 볼 수 있다. 가설 건축물의 경우 구청에서 허가를 받으면 되지만, 공유재산 관리 관련해서는 서울시도 권한이 있다. (스마트쉼터가 새로운 개념으로 정리가 되지 않아) 시와 자치구의 권한이 상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의 한 버스정류장 옆 스마트쉼터. 사진=임지혜 기자

서울시 만류에도 정류장 쉼터 늘리는 자치구들


문제는 스마트쉼터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 없는 상황에서 자치구들이 양적 확대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대문구 측은 신촌동 버스정류장 옆 스마트쉼터는 ‘스마트쉘터’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서울시는 해당 정류장은 스마트쉘터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자치구가 자체적으로 설치하는 스마트쉼터는 서울시가 조성한 버스정류장 시설인 스마트쉘터와는 다르다. 더위와 추위를 피하거나 버스 도착 정보를 볼 수 있는 등 시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는 점에선 동일하지만 설치와 관리 주체가 다르다. 

서울시의 스마트쉘터 버스정류소는 현재 13곳이며, 유형별로 시내버스 5개(숭례문·구파발역·독립문공원·건대입구역·송파구청/방이맛골), 광역버스 2개(홍대입구역·합정역), 간선급행버스 2개(공항대로·천호대로)가 있다. 

특히 시는 스마트쉼터가 버스정류장 설치 제한 시설물이라고 보고 있다. 설치가 불가피하다면 버스정류장에서 20m 이격을 두고 설치하도록 자치구에 요청하고 있지만 그뿐이다. 

강인철 서울시 버스정책과장은 “버스 승하차 시 시민들이 불편할 수 있고, 안전 문제도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버스정류장 전후 20m 밖에 시설물을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며 “도로점용허가 주체가 자치구이다 보니 본인들이 허가를 내고 (스마트쉼터를) 설치해 버린다. 공문을 통해 정류소 정차 범위 20m 내에는 시설물 설치못하게 돼 있다고 안내를 해도, 이미 이용 승객이 생겨버려 철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특별시 시내버스정류소 등의 정비 및 관리 조례’에 따르면 시내버스의 정비 및 관리 업무의 책임은 서울시장에 있다. 지방자치법 시행령 제10조2항 역시 대중교통행정에 관한 사무는 자치구가 아닌 특별시·광역시에서 처리하는 사무로 구분하고 있다. 그럼에도 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자치구의 협조만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김 과장은 시와 자치구가 손잡고 버스정류소와 스마트쉼터를 통합하는 방안에 대해선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시범 운영한 스마트쉘터 13곳의 효과를 분석한 결과, 유지관리비 부담으로 추가 확대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버스정류장 옆 스마트쉼터. 사진=임지혜 기자

전문가들 “서울시 허가, 명확한 시설 기준 필요”


전문가들은 부적절한 위치에 설치된 버스정류장 인근 스마트쉼터를 개선하고, 의욕만 앞서 설치할 것이 아니라 시설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보도 시설물은 보행자 안전,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만들어야 한다”며 “우리나라 법체계에서는 유효 보도폭이 2m 이상 나와야 한다”고 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우측통행인데, 버스정류장 우측에 스마트쉼터를 둬야 버스가 오는 게 보인다. 좌측에 두면 쉼터가 시야를 가릴 수 있다. 위치를 제대로 잡지 못하면 대중교통 이용객에 오히려 방해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시민들에 굉장히 도움을 주는 시설임은 분명하다”면서 “브라질 쿠리치바의 원통형 정류장과 같이 쉼터와 정류소를 일체형으로 만드는게 바람직할 것 같다”고 조언했다. 

이수범 서울시립대학교 교통공학과 교수도 “강남구와 같이 보도 폭 공간이 여유가 있는 곳은 큰 문제가 없는데, 공간이 많이 없는 구도심의 좁은 보도에 억지로 (스마트쉼터를) 놓으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예컨대 한양대역 앞 스마트쉼터는 차도에 바짝 붙여 설치했다. 도로 반대쪽으로 출입문을 설치해 안전하게 보도폭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용자들의 편의성까지는 좋은데 안전성 측면에서 과연 안전을 담보로 한 것인지는 의문”이라며 “안전은 획일적인 것이 아니다. 주변 상황과의 조화가 필요한데 이런 부분을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대로변에 설치 하려면 서울시에 허가를 받는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임지혜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