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2월20일까지 아시아나항공 신주 인수를 거쳐 자회사로 편입할 계획을 밝힌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노동자들과의 협상에는 나서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마일리지 통합과 직원 근속 연수에 따른 승진 등 주요 안건은 논의하지 않은 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 승인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에 대한 EC의 최종 승인 결과가 이르면 이번 달 내로 발표될 예정이다. 지난 2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EC가 제시한 승인 요건을 모두 이행했다.
대한항공은 파리(프랑스), 로마(이탈리아), 바르셀로나(스페인), 프랑크푸르트(독일) 유럽 4개 주요 노선을 국내 저비용항공사(LCC)인 티웨이항공에 이관했으며, 아시아나항공도 화물사업을 에어인천에 매각했다.
글로벌 10위권 ‘메가 캐리어’ 출범을 그려온 대한항공은 합병 마지막 관문을 앞두고 있다. 미국 승인 시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결정 4년 만에 14개 필수 신고국의 승인을 모두 얻게 된다.
그렇다면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은 ‘메가 캐리어’의 탄생을 어떻게 바라볼까.
쿠키뉴스가 만난 두 항공사 소속 직원들은 ‘시니어리티(근속 순위)에 따른 승진’을 우려하는 아이러니함을 보였다.
대한항공 사무직 관계자는 “회사의 크기가 직원들의 파이까지 키워주지 않는다. 파이를 나눠야 하는 일은 누구에게도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대한항공에는 대리 직급으로 정년퇴직하는 사람들도 많다. 승진 조건은 부서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특별한 사유 없이 진급하지 못하는 동료, 선배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며 “합병 이후 근속 연수를 어떻게 하겠다는 가이드라인은 여전히 듣지 못했다. 내부 승진도 수월하지 않은데 합병으로 직원 수가 늘어나면 승진과 관련된 혼란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 객실승무원도 합병 승인이 완료된다는 소문 외엔 직급 체계에 대한 언급이 없어 답답하다고 했다.
객실승무원 관계자는 “애초 11월 5일~15일 사이에 합병이 완료될 것이란 소문이 회사 내부에 돌았다. 합병 이후 직급 체계가 어떻게 적용되는 것인지 궁금하지만 알 길이 없다. 합병 이후 2년간 서로 유니폼을 바꿔입고, 파견을 나간다는 얘기만 들었다”며 “대한항공 전체 직원 중 3분의1이 객실 승무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중 진급하는 인원수는 많지 않다. 객실 승무원 인원이 늘어나면 승진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우려했다.
권수정 아시아나항공 노조 위원장은 지난 4년간의 합병 승인 과정에 대해 ‘안전과 국민 편의가 사라지는 것을 묵도한 시간’이라고 했다.
권 위원장은 “경쟁 시스템(아시아나항공)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는 향후 5년 단위로 항공권 가격, 화물 운임료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과 함께 구축해 온 항공 경쟁 시스템이 ‘민간’으로 돌아가면 그 피해는 되려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현재 미국을 다녀올 수 있는 마일리지로 생수밖에 못 사는 상황을 국민들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 바로 여기에 해당하는 예시”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일하고 있는 숙련된 노동자들과 결합하는 것이 인수합병에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노동자들의 의견을 청취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없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을 대변하는 노동조합과의 교섭자리에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며 “강제적으로 한 쪽에서 일방적으로 시니어리티(근속 순위)를 조정하지 않도록 충분한 의견 교환을 거쳐야 한다. 이러한 절차를 거쳐야 결합이 만들어지고 안전이 담보될 수 있는 항공사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한항공 관계자는 합병 이후 인위적인 구조조정이 없을 것이란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고용 보장은 인수통합의 전제조건이며, 운수권과 슬롯 양도가 수반되더라도 신규노선 취항 및 운항편수 증대를 통해 사업규모를 최대한 유지 후 고용유지를 실현할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