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급여 본인부담 정률제’ 뭐길래…들끓는 시민단체

‘의료급여 본인부담 정률제’ 뭐길래…들끓는 시민단체

기사승인 2024-11-26 06:00:09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정부가 저소득층인 의료급여 수급자의 본인부담체계를 정액제에서 정률제로 개편하는 안을 발표하자 취약계층의 ‘의료 안전망’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수급자의 도덕적 해이와 병원 과다 이용을 이유로 개편을 주장하지만, 시민단체와 야당은 취약계층의 병원 이용을 가로막는 악법이라며 맞서고 있어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26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7월 정부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를 개최하고 의료급여 본인부담체계 정률제 개편을 예고했다. 의료급여는 기초생활수급자와 노숙자 등 생계유지 능력이 없는 국민에게 의료비를 지원하는 공공부조 제도다.

현재 정액제 시행으로 의료급여 1종 수급자의 경우 의원(1차 의료기관)에서 1000원, 병원(2차 의료기관)에서 1500원, 상급종합병원(3차 의료기관)에서 2000원 등 정해진 액수의 진료비를 낸다. 정률제로 바뀌면 의원은 진료비의 4%, 병원은 6%, 상급종합병원은 8% 등 일정 비율의 진료비를 내야 한다. 1회 500원이던 약값은 전체 약값의 2%(상한금액 5000원)로 올라간다.

정부는 본인부담금 인상을 통해 의료급여 수급자의 과다 의료 이용이 억제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건강생활 유지비(진료 보조금)를 월 6000원에서 1만2000원으로 인상해 수급자들의 진료비 인상 부담도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보건복지부 전경. 사진=박효상 기자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지난 7월25일 ‘2025년 기준 중위소득 인상 및 급여별 선정 기준’ 브리핑을 통해 “그간 물가와 진료비는 지속적으로 인상됐지만 의료급여 본인부담은 정액제로 운영해 실질 본인부담이 계속 하락하고, 진료비 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며 “정률제 도입을 통해 수급자의 비용 의식을 높이고, 합리적인 의료 이용을 유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건강생활 유지비를 100% 인상해 수급자 부담을 최소화하겠다”면서 “이번 제도 개편으로 월 3~5회 외래를 이용하는 대부분의 수급자들은 본인부담이 없거나 현행보다 감소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정률제를 적용할 경우 의료급여 수급자의 본인부담금이 급격히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수급자가 상급종합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뒤 200만원의 진료비가 나오면 지금은 2000원만 내면 되지만, 정률제로 바뀌면 16만원(8%)을 지불해야 한다. 본인부담금은 월 5만원을 넘지 않도록 규정돼 있어 일단 본인부담금을 납부한 뒤 사후에 초과분을 환급받을 수 있다. 이는 나중에 돌려받을 수 있더라도 당장 16만원을 내야 치료받을 수 있다는 의미로, 최소한의 비용으로 생계를 꾸리는 의료급여 수급자들에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의료급여 본인부담 정률제로 과잉 의료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시각인 반면 시민단체와 야당은 ‘엉터리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의료급여 수급자 중 과다 이용자는 1%에 불과한데 이들을 규제하느라 전체 수급자를 의료 빈곤에 빠트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과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5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료급여 수급자 10명 중 6명은 건강검진도 받지 못하는 등 적절한 의료 서비스 혜택을 못 받는 상황”이라며 “의료 차별 문제를 유발할 수밖에 없는 이 개편안은 수급자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건강권마저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9일 무상의료운동본부와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는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료급여 본인부담 정률제 개편안 폐지 등을 촉구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

복지 관련 학회들도 의료급여 정률제 전환 반대에 힘을 실었다. 한국사회복지정책학회 등 5개 학회는 지난 19일 공동성명을 통해 “의료급여 정률제 도입은 가난한 이들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개악’일 수밖에 없다”면서 “수급자 중 상당수는 의료 필요도가 높은 노인, 장애인, 환자 등이라는 점에서 건강보험 가입자에 비해 의료 이용량과 진료비 지출이 많다는 사실만으로 과다 의료 이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단정해선 곤란하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복지부 주장대로 부적절한 과다 의료 이용 문제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문제 해결을 위한 적합한 수준과 방식의 정책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라며 “과다 의료 이용 문제에 대한 책임과 대안을 수급자 측면에서만 찾는 것은 부당하다. 오히려 치료 개시 여부를 결정하고 치료 수단을 선택할 권한을 가진 의료 공급자 측면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부연했다.

의료급여 정률제 대안에 대해선 “기존 정액제를 일정 수준 인상하는 방안이나 문제 삼고 있는 특정 서비스 항목에 국한된 규제책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 정부가 추진해야 할 정책은 정률제가 아니라 의료급여의 제도적 보장성을 강화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단체들은 의료급여 정률제 도입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수급자들은 정률제 개편안을 ‘굶어 죽을지 아파 죽을지 선택하라’는 개악이라고 평가한다”면서 “지금도 미충족 의료 수요가 높은 빈곤층에게 소모비용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들어 의료 접근성과 건강권을 침해할 게 불 보듯 뻔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안 그래도 의료급여 수급자들은 병원을 이용하는 데 있어 차별을 마주하고 있다. 병원에서 비용 부담으로 비급여 치료를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차별을 경험한다”라며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기 위해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정률제 개악안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여러 우려가 일자 신중하게 검토해 올해 안에 의료급여 정률제 개편에 따른 보완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조 장관은 지난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외래 진료비 등이 과도하게 높은 경우는 의료 이용 감소를 유도하고 의료기관 이용이 필수일 때는 본인부담을 경감할 수 있는 보완 장치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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