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팽창에 따른 과잉진료가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는다는 문제의식이 사회 전반으로 번진 가운데 건강보험 제도와 비급여 진료 개편이 진정한 의료개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이 26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의료개혁의 시작, 무엇부터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개최한 정책좌담회에서 건강보험 제도와 국민 의료 이용 경향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됐다.
이은혜 의협 정책이사(순천향대 부천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현재 한국이 건강보험 제도를 유지할 수 있는 나라인가에 대해선 솔직히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건보 제도가 지속 가능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변화하는 것이 의료개혁이다”라고 말했다.
건보 재정이 고갈돼 취약계층이 병에 걸려도 치료받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건강보험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은 올해부터 재정수지 적자로 전환돼 적자폭이 커진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23~2032년 건강보험 재정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부터 건보 재정 당기수지 적자가 예상된다. 2028년에는 적자액이 누적돼 적립금 소진이 예상되고, 2032년 누적 적자액이 61조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정책이사는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원정 분만 등의 말에서 알 수 있듯 현재 건보 제도는 국민 의료를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며 “의료개혁을 하더라도 건보 제도의 어떤 부분을 보완할지 명확한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요양기관계약제로 전환해 공공의료를 제공할 공급자와 민간의료를 제공할 공급자로 시장 분리가 필요하다”면서 “이는 전 국민에게 의료를 보장하지 않는 의료민영화와 다른 것으로, 기본적인 의료를 누리겠다는 사람과 좋은 서비스를 받고자 하는 사람으로 나누면 재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윤석준 고려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무분별한 의료쇼핑을 막고 필수의료에 재원을 더 투자하는 지속 가능한 건보 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짚었다. 윤 교수는 “사회보험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들 중에서 우리나라처럼 의료비가 급증하는 나라는 없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입원일수가 가장 길며 어르신들은 의료 이용을 문화활동처럼 하신다”라며 “현행 건보 체계에서 합리적인 의료 분배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진 상황에서 정부는 높은 의료비용에 대한 문제를 의료 공급자와 소비자에게 환기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그런 노력부터 시작해야 어렵게 만들어놓은 의료보장 제도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김진현 연세의대 예방의학교실 강사는 국민 소득 수준 등을 고려했을 때 의료 시장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김 강사는 “제2의 건강보험이라는 민간보험이 풍선 효과를 일으키며 수가 체계가 왜곡됐다”며 “다양해진 국민적 의료 니즈와 소득 수준 등을 고려했을 때 의료 시장화를 받아들여 단일한 건강보험 체계를 분할해 시장에서 의료서비스에 대한 가격이 형성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 서비스 가격을 소비자가 인지할 수 없게 만든 것이 과잉의료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대병원 사직 전공의인 장재영 의협 젊은의사정책자문단 위원은 “현행 건강보험 체계에선 의료서비스 가격을 소비자가 인지할 수 없다”라며 “인위적으로 의료서비스 가격을 낮게 책정하고 수요는 자유 시장에 맡겨놓으니 환자의 의료 수요 욕구가 지나치게 커져 충족하지 못한 욕구의 원인을 의사 수 부족에서 찾고, 의사들은 수요가 많은 이유를 환자들이 의료를 너무 많이 이용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장 위원은 “이는 의사와 환자 간 신뢰를 깨는 행동으로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 있다”면서 “의대 재학 6년 내내 환자와의 라포를 잘 형성하라는 내용을 교육 받았는데 이런 상황에선 진료실에 들어가 환자를 보기 어렵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