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세에 다시 오라던데.”
9편에 걸쳐 보도한 ‘이상한 나라의 세대분리법’ 기획은 한 지인의 말부터 시작됐다. 그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한 20대 청년이다. 용돈 줄 여력이 되지 않는 부모 밑에서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아득바득 서울살이를 버텼다. 인턴에 합격한 그는 운 좋게 고시원에서 LH 임대주택으로 이사할 수 있었다. “비좁지만 서울에 방 한 켠이라도 있는 게 어디냐”라며 웃던 그는 6개월 뒤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야 할 신세가 됐다. 인턴이 종료되자, 독립가구였던 그가 다시 부모와 동일가구로 분류되며 순위 경쟁에서 밀렸다는 이유다. 직원에게 억울함을 호소하자, 30세가 되면 다시 신청해보라는 조언을 받았단다.
2개월간 만난 ‘독립 제약 청년’들의 사연들은 더 기가 막혔다. 최영훈(가명·33·남)씨는 부친이 오래 전 집을 나가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가족 관계 단절로 볼 수 없다며 20세가 되던 해 세대분리 신청을 거절당했다. 최지혜(25·여)씨는 가정폭력을 오래 견뎌 왔음에도, 경찰 신고 기록이 없어 세대분리를 할 수 없다고 통보 받았다. 부모가 청년 명의의 통장이 살아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단 1만원을 보냈다는 이유로, 가족관계 단절이라 볼 수 없다며 돌려보낸 경우까지. 세대분리 실패 사례가 쏟아졌다. 부모에게 연락이 갈까 세대분리 신청 과정에서 포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모두 20대라 겪은 일이었다. 기초생활보장법은 만 30세 미만은 부모와 따로 살아도 청년을 독립가구로 보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20대는 일반적으로 부모 지원을 받는다고 여긴 것이다. 20대가 독립가구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은 결혼을 하거나 일정 소득 이상(올해 기준 89만1378원)을 버는 것 뿐이다. 두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가족 관계 단절’을 증명해야 한다. 20대 청년들은 부모와 단절됐음을 증명하기 위해 ‘가족 해체 사유서’ 작성을 요구 받는다.
부모로부터 독립했지만 정부의 도움도 받을 수 없던 20대 청년들은 갈 곳 없이 떠돌았다. 친구 집을 전전하거나 24시 무인카페, 코인노래방, 공중전화박스, 공중화장실 등에서 밤을 보내기도 한다. 혹은 가정폭력을 참으며 30세가 될 때까지 버틴다고 한다. 부모 지원을 전제로 한 세대분리법이 20대 청년들을 독립하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가 된 것이다.
보도가 나간 뒤 보건복지부가 ‘가족관계 단절’ 세대분리 특례조항과 관련해 지자체에 재차 안내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온 건 환영할 일이다. 복지부는 지난해 세대분리 기준과 관련해 내부적으로 검토한 바 있지만, 연령 기준 외에 부정수급자를 거를 수 있는 장치가 없어 고민이라고도 전해왔다. 현재 ‘30세’ 연령 기준은 부모의 지원을 받고 있음에도 급여를 받으려는 ‘부정수급자’를 막는 유일한 장치라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악용 가능성이 문제일까, 필요한 사람에게 복지 지원이 돌아가지 않는 것이 문제일까.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생활이 어려운 사람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활’을 돕기 위해 마련됐다. 사회적 위험에 빠졌을 때 최저 생계를 보장해줘야 되도록 빨리 노동시장에 복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경제에 필요한 인력이 공급되고 시장이 원활해진다. 쉽게 말해 이들의 자립을 돕는 것이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도 이익이 된다는 얘기다. 20대 청년들이 세대분리 연령 기준에 막혀 성인으로서 자립하지 못해 입는 사회적 피해가 더 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가구의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기존의 제도가 포용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세대분리 기준에 대해 사회적 고민이 필요한 때다. 아울러 기사가 나가자 세대분리 실패 당사자라고 밝힌 이들이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청년들에게 희망이 됐다”며 메일을 보내오기도 했다. 후속 보도에 힘쓰겠다는 말로 답장을 대신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