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일 한밤중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비상계엄 선포는 1979년 10월 이후 45년 만으로, 1987년 민주화 이후 초유의 사태다. 이날 오후 10시23분 생중계 방식으로 시작된 윤 대통령의 심야 긴급 대국민 특별담화는 사전 공지 없이 기습적으로 이뤄졌다. 윤 대통령이 내건 명분은 ‘반국가 세력 척결’과 ‘국가 정상화’였다. 야당의 장관 탄핵과 예산 삭감 문제 등을 거론한 그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포고령이 발표되면서 대한민국은 일순간 공황에 빠졌다. 계엄사의 박안수 육군대장은 국회·지방의회·정당, 정치적 결사집회 활동 등의 금지, 모든 언론의 계엄사 통제,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의료인의 48시간 내 복귀 등을 명령했다. 계엄 선포에 분노한 시민들이 몰려가면서 국회 일대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돌았다. 경찰들은 계엄령 선포 직후 국회 출입구를 봉쇄했고, 신원이 확인된 일부 인원만 출입이 허용됐다. 국회의사당 정문에서는 경내에 진입하려는 인원과 출입을 통제하는 경찰이 뒤엉켜 아수라장이 됐다.
오후 11시40분이 넘자 국회 상공에는 군 헬기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통령 관저 인근을 비롯한 도심 곳곳에서 군 병력이 움직이는 모습도 포착됐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본회의 소집령을 내리자, 총기로 무장한 계엄군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국회 본청 출입을 위해 정문과 후문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이에 당직자들이 책상과 의자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진입을 막으면서 극한 대치가 수십 분 이어졌다.
계엄군 일부는 국회 본청 진입이 막히자, 국민의힘 당대표실 유리창을 깬 뒤 우회 진입했다. 국회 관계자들은 이들의 진입을 막기 위해 소화기를 터뜨려 저지했다. 이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지면서 넘어지거나 다친 사람도 속출했다.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황 속 여야 의원들은 각 당의 소집령 발동으로 속속 국회로 집결했다. 일부 의원은 담을 넘어 본회의장에 들어오기도 했다. 여야 의원 190명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50여분 뒤인 4일 오전 1시 본회의를 열고, 만장일치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했다. 국회가 재적 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이 지체 없이 해제하도록 헌법에 규정돼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참석 의원 전원의 찬성으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안심하기 바란다. 국회 경내에 들어온 군경은 당장 국회 밖으로 나가 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여야 대표들은 한목소리로 ‘계엄 무효’를 선언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재적인원 190명 전원 찬성으로 비상계엄은 해제됐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안심하셔도 된다”며 “민주당은 대통령의 계엄해제 선언 전까지 국회에서 자리를 지키겠다. 끝까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겠다”고 말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국회가 계엄 해제안을 결의했다. 계엄은 실질적 효력을 다 한 것이므로 지금 이순간부터 군과 경찰 등 물리력을 행사하는 모든 국가기관은 위법, 부당한 지시에 따르지 않을 의무가 발생한다”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경거망동도 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비상계엄이 사실상 ‘2시간 천하’로 끝나면서 그 후과는 윤 대통령에게 돌아가게 됐다. 탄핵은 물론 군을 동원해 국회를 장악하려고 한 점 등이 내란죄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즉각 사퇴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탄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민주당은 이날 국회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가진 뒤 발표한 결의문에서 “비상계엄 선포 자체가 원천무효이고, 중대한 헌법 위반이자 법률 위반”이라며 “이는 엄중한 내란행위이자, 완벽한 탄핵 사유”라고 규정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해 오는 5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할 방침이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국회 본청에서 기자들과 만나 “(탄핵안을) 지금 준비하고 있다”며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된 법률 위반, 내란죄 관련된 내용이기 때문에 (탄핵소추안 작성이) 복잡할 게 없다”고 밝혔다.
조국혁신당 역시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내란죄로 규정, 이를 탄핵 사유로 하는 탄핵소추안을 발표했다. 조국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본관 로텐더홀에서 ‘3년은너무길다 특별위원회(탄추위)-의원총회 연석회의’를 열고 “윤 대통령의 하야건 탄핵이건 관계없이 형사고발 돼야 하고, 비상계엄에 공모한 사람에 대한 처벌도 이뤄져야 한다”며 “오늘 만든 탄핵소추안은 민주당을 포함한 다른 야당에 공유했다”고 설명했다. 혁신당은 탄핵소추안 발의 전까지 다른 야당과 함께 수정·보완할 예정이다.
윤 대통령은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의 엄호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계엄령 해제 요구 결의안 표결 당시 국회 본회의장에서 표결에 참여한 의원과 당사에서 대기한 의원으로 여당 108석이 갈라지면서 내분이 격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날 계엄령 해제 요구 결의안 표결에는 한동훈계를 중심으로 여당 의원 18명이 참여해 찬성표를 던졌다.
국민의힘은 이날 오전 7시부터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의원총회 등을 잇달아 열고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다.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탈당, 내각 총사퇴, 김용현 국방부 장관 해임에 대해 일부 공감대가 형성됐다. 여당은 엄중한 시국인 만큼 의원총회를 통해 최종 결론을 도출할 계획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오늘의 참담한 상황에 대해서 국민들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윤 대통령은 이번 상황을 직접 소상히 설명해야 하고, 이번 계엄을 건의한 국방부 장관을 즉각 해임하는 등 책임 있는 모든 관계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친한(친한동훈)계 일각에선 ‘윤 대통령 탄핵론’이 불가피해졌다는 의견이 나왔다. 조경태 의원은 이날 SBS 라디오에서 ‘윤 대통령 탄핵 절차도 검토하느냐’는 취지의 사회자 질문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고 본다”고 답했다. 김상욱 의원도 같은 날 MBC 라디오에서 “탄핵에 대한 논의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정상적인 대통령직 수행이 불가하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에서도 ‘비상계엄’ 후폭풍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대통령실은 이날 오전 취재기자단에 “실장·수석 일괄 사의 표명”이라고 공지했다. 수석비서관 이상 참모진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정 실장 주재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일괄 사의를 표명하기로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표가 수리될 경우, 향후 탄핵소추안 등에 대한 대응책 등 대통령실의 기능이 사실상 마비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전국 곳곳에선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민주노총과 참여연대, 군인권센터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날 오전 서울 광화문 이순신동상 앞에서 ‘전면적 저항운동 선포 전국민 비상행동’을 개최하고 “국가비상사태에 해당하지 않는 상황에서 선포된 비상계엄은 그 자체가 위헌이자 위법해 무효”라며 국회의 신속한 탄핵 소추·의결과 전국민적 저지행동을 촉구했다.
시민들도 입을 모아 계엄령의 부당성을 호소하며 대통령에 대한 책임을 추궁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만난 시민 A씨는 이날 쿠키뉴스와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의 계엄사태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1초도 (대통령직에) 있을 자격이 없고,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시민 B씨 역시 “국가의 중대한 비상사태에 한해 행사돼야 하는데 헌법 준수 의무가 있는 대통령이 야당에게 반국가 단체라는 혐의를 씌워 (계엄령을) 행사하는 게 부당하다”며 “피와 땀을 흘려 민주주의를 지켜온 우리 선조들에게 부끄럽다”고 덧붙였다.
국회의사당 일대에서도 비상 계엄령의 여파로 윤 대통령의 체포·탄핵 등을 주장하는 집회가 진행되고 교통 통제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