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18일 김경철씨는 잔혹한 곤봉에 희생됐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많은 사람이 비명을 지르며 계엄군을 피해 달아났지만, 청각장애인인 김씨는 주변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수어로 저항하고 농아 신분증을 보여주며 악을 썼지만 통하지 않았다. ‘벙어리 흉내를 낸다’며 더 심해진 공수부대원들의 곤봉 세례에 그는 차디찬 보도블럭 위로 쓰러졌다. 며칠 전 딸 백일잔치에서 소리 없는 웃음꽃을 피웠던 그는 무자비한 폭력에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그렇게 5·18 두번째 희생자가 됐다.
많은 희생으로 얻어낸 자유 민주주의가 45년 만에 위태로워졌다. 모두가 공포에 휩싸였던 지난 3일 비상계엄의 밤, 장애인들에겐 더 큰 공포였다. 장애로 인해 수시로 쏟아지는 기사를 읽을 수 없는 이들, 새벽 내내 뉴스를 전하는 앵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이들이다.
혼란함이란 핑계로, 사회는 장애인에 대한 의무와 배려에 눈을 감았다. 비상계엄 선호 당시 지상파 3사와 종합편성채널 4사 중 수어로 동시통역을 제공한 방송사는 KBS 한 곳뿐이었다. KTV 국민방송을 통해 송출된 윤 대통령 담화 화면에는 수어 통역과 해설방송 등이 제공되지 않았다. 재난문자도 발송되지 않았다. 계엄령 선포가 발송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당시 행정안전부의 판단에서다.
“만약 전시 상황이었다면, 장애인들은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생존에 위협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시각장애인인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한 외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장애인들에게 정보 접근성은 불편을 넘어선 생존의 문제란 것이다.
청각장애인 자녀로 구성된 코다코리아도 성명서를 통해 “6시간 만에 비상계엄은 종료됐지만 농인을 포함한 장애인, 사회적 소수자에게 닥친 공포는 여전히 남아 있다”며 “반헌법적 계엄이라는 엄중한 사태를 둘러싸고 수어·문자통역 등의 장애인 정보접근성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은 장애인의 시민권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고스란히 비춘다”고 했다.
비상 상황에서 정보 접근권은 안전과 직접 관련된다. 장애인과 그 가족을 위한 시스템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 국가 기관과 언론은 정보적 ‘배리어프리’를 위해 국가의 중대 발표나 비상 상황에서는 실시간 수어 통역을 의무화해야 한다. 배리어 프리는 고령자나 장애인과 같이 사회적 약자들이 편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물리적인 장애물, 심리적인 벽 등을 제거하자는 운동이다. 장애 특성에 맞는 맞춤형 시스템도 만들어져야 한다.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여의도 집회 현장 인근에서 마주친 한 시각장애인이 다른 사람의 팔에 의지한 채 북적이는 인파 속으로 걸어가던 모습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고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많은 시민이 국회로 달려온 12월3일은 ‘세계 장애인의 날’이다. 비상계엄 같이 안전을 위협받는 상황에 더이상 장애인들이 소외 당하지 않고 보호받을 수 있는 변화가 이뤄지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