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임을 위한 행진곡이 여의도에서 울려 퍼진다.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 로제 ‘아파트’, 지드레곤 ‘삐딱하게’와 같은 K-POP부터 캐럴송을 개사한 백자 ‘탄핵이 답이다’가 응원봉 물결을 일으킨다. 민중가요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K-POP이 절묘한 조화를 만드는 것처럼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가 한데 어울려 차가운 아스팔트를 따뜻하게 덥히고 있다. 응원봉의 빛의 온도가 추운 겨울의 냉기를 뚫고 민주주의의 온도를 높인다.
2016년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에 탄핵을 외치며 광장에 머무른 적이 있다. 서울에 갈 때마다 눈발이 날렸고 검은 아스팔트는 꽁꽁 얼었다. 종이컵에 끼운 미약한 촛불이 눈바람에 꺼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촛불 파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는 오지 않기를 바랐던 그날이 다시금 오고야 말았다. 하지만 시민은 바람에도 꺼지지 않는 더 강력한 각양각색의 빛을 들고 응원봉 파도를 만들고 있다. 수능시험을 마친 고 3학생들이 연단에 올라 각자가 생각하는 민주주의에 대해 선언한다. 촛불보다 더 밝아진 응원봉이 빛의 기적을 만들고 있다.
어깨를 다쳐 집회에 참여할 수 없었던 필자는 유튜브와 뉴스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었다. 불쑥 ‘저 젊은이들이 왜 저곳에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겼다. 세대 간 갈등의 대표적인 문제아로 찍혔던 MZ세대가 여의도를 빛으로 물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임홍택은 <90년생이 온다>에서는 90년생은 공시족, 공딩족이 많고 간단함, 병맛, 솔직함으로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한다고 했다. 또한 <2000년생 온다>는 2000년생을 초합리, 초개인, 초자율의 탈회사형 AI인간으로 규정지었다. 세대별 특성의 일부는 동의하나 대부분의 내용은 참고 사항으로 두겠다. 나 역시 서태지의 등장과 더불어 X세대로 불리며 ‘개성 있는 용모 외엔 신통한 것 없다’는 세대 꼬리표를 달았었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새로운 세대의 사회로의 등장은 기성세대에게는 낯선 일이라는 것이다. 세대의 특성을 이해하고 함께 공존해야 한다는 전제로 MZ세대 역시 기성세대의 특성을 이해하는 일은 어려운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에게 민주주의 수호 의지가 기성세대 못지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더 창의적이고 열정적이며 뜨거웠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거리로 나와 민주주의를 수호했을까? 이들은 교과서에서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과 같은 민주주의 수호의 아픈 역사를 배웠을 것이다. 교과서 밖 현실에서는 세월호 사건, 이태원 참사, 채 해병 사망 사건과 같은 상식 밖의 사건을 직접 목도하였다. 겪지 않아도 될 참사로부터 이들이 배운 것은 무엇일까? 바로 공정과 상식, 민주주의 수호에 대한 깨달음이지 않을까?
민주시민 교육은 2000년 이후 교육과정에 학교를 통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학교자치를 통해 학생자치회가 주도성을 갖고 운영되고 있으며 학생예산참여제를 통해 학교 운영에 있어서도 예산심의권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충남교육청은 ‘충남형 학교 민주주의 지수’를 개발하여 학교의 민주적 상태와 민주시민교육의 실천 정도를 진단하고 민주주의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민주주의 역량은 다름을 이해하고 자신의 의견을 주장할 줄 아는, 개인이 가장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주권자임을,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통해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가치이다.
‘민주주의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다’라는 말은 민주주의 교육의 당위성과 필연성을 강조하고 있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초대 대통령 프리드리히 에버트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자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튼튼한 민주 사회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가치와 생활 태도를 내면화한 민주 시민이 필요하다.
12월 10일,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은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수상 소감을 밝혔다. “문학을 읽고 쓰는 작업은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일”이라 하였다. “우리가 태어난 이유, 고통과 사랑이 존재하는 이유, 우리가 세상에 잠시 머무는 이유, 무슨 일이 있어도 인간으로 남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와 같은 세상에 가장 본질적인 의문을 세계인 모두에게 던졌다. 이 질문은 우리가 늘 지나치는 당연한 것 같지만 끊임없이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자유와 민주주의, 생명의 존엄함에 대한 위대함을 숙고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는 여의도 광장에서 세대를 초월하여 스스로 성장하는 민주시민을 보았다. 민주시민교육이 필요한 이유이다. 삶은 성장의 연속이고, 교육은 경험을 재구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는 시구가 형형색색 응원봉으로 살아 빛을 내는 것을 본다. 희망을 본다. 그리고 사과를 전한다.
“미안하다, 광장에서 서태지 응원봉을 들고 함께 하지 못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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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정 충무교육원 교육연구사는 공주사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2002년 교직에 입문했다. 이후 아산교육청, 충남교육청 장학사를 거쳤다. 충남교사문학회 활동을 시작으로 현재 (사)한국작가회의충남지회 사무처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사회 온도를 1% 올리기 위해 교육 현장에서 치열하게 공감과 소통에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