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대형 증권사들이 내년 경영 전략을 수립함과 동시에 대규모 조직개편을 단행하고 있다. 리테일과 함께 떠오르는 먹거리 시장인 퇴직연금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조직쇄신과 몸집 불리기에 나선 곳도 있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자기자본 기준 10대 증권사 가운데 미래에셋증권, 메리츠증권,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신한투자증권, 키움증권 등이 대규모 조직개편을 실시했다.
대형 증권사들이 이같은 개편에 돌입한 이유는 최근 대내외적 불확실성 요인으로 향후 실적 전망이 암울해서다. 이달초 갑작스러운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서 가결되면서 발생한 정치적 리스크에 국내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도가 저하됐기 때문이다.
연초 증권사들의 실적을 이끈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수익성도 연말을 향하면서 크게 악화되고 있다. 국내 증시 일평균 거래대금(2024년 누계 기준)이 지난 20일 장마감 기준 19조2807억원으로 지난해말 집계된 19조6297억원 대비 떨어졌다.
특히 일평균 거래대금은 밸류업 프로그램이 공식화된 지난 2월말 20조7837억원과 비교하면 크게 후퇴했다. 증권사 관계자는 “리스크 요인을 모두 받아들이는 국내 증시의 변동성에 투자자들은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린 상황”이라며 “브로커리지 수익성 악화가 현실화된 가운데 초고액자산가 대상 자산관리나 퇴직연금 시장 등 실적 제고를 이룰 수 있는 부문 강화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수익성 확보’ 위한 ‘리테일·퇴직연금’ 경쟁력 제고 전략 확산
이처럼 국내 증시의 불확실성이 이어질 것으로 관측되면서 증권사들은 대응을 위한 조직개편에 착수했다. NH투자증권은 조직개편 소식을 발표하면서 리테일 부문 강화를 경영 핵심으로 강조했다. 올해 증권사 영업의 키워드인 자산관리(WM) 시장 영향력을 증폭시키겠단 계획이다.
이를 위해 NH투자증권은 리테일 혁신추진부를 신설해 리테일 비즈니스 변화관리를 총괄하게 했다. 또 기존 디지털 전략본부를 그로스(Growth)그룹으로 변경했다. 리테일 지원본부의 경우 리테일 자문(Advisory) 본부로 변경해 전문적인 자문서비스와 지원 업무에 나설 예정이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초부유층 대면 채널과 새로운 핵심 고객군인 디지털 부유층을 공략하고, 디지털 채널로 분화 발전해 나가는 조직 체계를 구축했다”고 밝혔다.
메리츠증권도 리테일부문 확장에 주력했다. 메리츠증권은 기존 리테일본부를 리테일부문으로 격상해 힘을 실었다. 리테일부문 산하에 프라이빗투자은행(PIB)센터와 리테일전략담당도 신규 설립했다. 리테일부문은 리서치센터장을 역임하던 이경수 전무가 담당하게 됐다. 이 전무는 산하로 편제된 초고액자사가 전담 PIB센터장도 겸직한다. 메리츠증권은 타 대형사 대비 리테일부문 수익성이 미비했던 만큼 이를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해석된다.
미래에셋증권은 그룹의 장기 성장 전략인 글로벌·인공지능(AI)·디지털·연금 비즈니스 강화 기조를 반영한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해외 비즈니스 확대에 맞춰 글로벌 경영관리부문을 신설하고, 연금자산 증대를 위한 마케팅 전략 강화 등 차원에서 기존 연금1·2부문을 연금혁신부문, 연금RM1부문, 연금RM2부문, 연금RM3부문으로 변경했다. 이외에도 초고액자산 고객관리 및 WM 글로벌 자산배분 경쟁력을 위해 PWM부문 신설로 산하에 패밀리 오피스센터를 편제했다.
한국투자증권은 △경쟁 우위 강화와 열위 보완을 통한 압도적 1위 달성 △전 부문 글로벌화 가속화 △성과 중심 디지털 전환(DT) 등을 조직개편 기조로 삼았다. 주목할 만한 것은 퇴직연금 부문 확대다. 한국투자증권은 퇴직연금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개인고객그룹에 퇴직연금2본부와 퇴직연금운영본부를 신설했다. 아울러 홍덕규 퇴직연금1본부장을 상무로, 성일 퇴직연금2본부장을 상무보로 승진시켰다.
삼성증권도 퇴직연금 부문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삼성증권은 이번 조직개편에서 채널솔루션부문 내 연금본부를 디지털부문으로 이관했다. 디지털부문은 디지털&연금부문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퇴직연금 및 개인연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에 연금투자자들의 디지털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며 “변화하는 시장 추세에 맞춰 조직개편을 단행했다”고 설명했다.
신뢰 회복 위한 ‘조직 쇄신’, 사업영역 확장 위한 ‘초대형 IB’ 도전
자산관리 중심의 리테일과 퇴직연금 부문 확장보다 쇄신과 체급 확장에 눈길을 돌린 증권사도 있다. 우선 신한투자증권은 시장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조직 쇄신에 주력했다. 지난 3분기 내부 직원의 상장지수펀드(ETF) 유동성공급(LP) 역할 과정에서 목적을 벗어난 코스피200 선물 거래로 1357억원의 파생상품 거래 손실이 발생한 영향이다.
당시 천상영 신한금융그룹 재무담당(CFO) 부사장은 3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고객의 신뢰와 단단한 내부통제가 업의 본질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원점에서 내부통제 시스템을 들여다보고 고쳐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도 “다시 한번 내부통제를 되짚고 강화하겠다”고 주주서신을 통해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신한투자증권의 조직개편도 조직문화와 시스템, 프로세스 전반의 개혁으로 이어졌다. 구체적으로 위기극복과 정상화의 빠른 추진과 지속가능 성장 체계를 확보하기 위한 △자산관리 △기업투자금융(CIB) △경영관리 등 세 가지 총괄체제를 도입했다. 각각의 총괄 대표는 사장 직위를 부여받아 내부통제 강화와 사업적 성장을 책임지게 된다.
또한 내부통제와 리스크관리 강화를 위해 재무관리 담당 조직을 본부로 격상하고 전사 회계를 통합 관리하게 했다. 아울러 프로세스혁신본부와 준법지원팀도 신설했다. 신한투자증권 관계자는 “이번 조직개편의 목적은 위기극복과 정상화를 조속히 달성하는 데 있다”고 했다.
올해 엄주성 대표 체제로 경영 쇄신을 진행해 오던 키움증권은 초대형 투자은행(IB) 인가 신청을 위한 발판 마련에 나섰다. 키움증권은 내년 1월1일자로 초대형 IB 진출을 위해 투자운용부문 산하에 종합금융팀을 신설할 방침이다. 키움증권 관계자는 “종합금융팀 신설은 초대형 IB 진출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며 “내년 인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키움증권은 지난 5월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에서 단기금융업(초대형IB) 인가 추진을 통해 발행어음 비즈니스 사업에 진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초대형 IB 증권사는 자기자본 2배 한도 내에서 어음을 발행해 자금을 운용할 수 있다. 키움증권은 자금조달을 통해 금융시장 모험자본 투입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증권사에 당부한 혁신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모험자본 공급 활성화와도 궤를 함께한다.
초대형IB의 금융당국 인가 조건은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증권사로 재무건전성, 대주주 적격성, 내부 통제 시스템 마련 등 추가 요건도 갖춰야 한다. 키움증권의 자기자본 규모는 올 3분기말 별도기준 4조8221억원이다. 키움증권이 인가를 받을 경우 국내 여섯 번째 초대형 IB 증권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