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업계가 중국발 공급 과잉 등 여파로 기나긴 터널을 지나며 체질 개선을 단행하고 있는 가운데, 주요 석화기업 수장들이 강한 실행력을 토대로 현재의 어려움을 타개해 나가자고 입을 모았다.
2일 석화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 롯데케미칼 등 주요 석화기업은 신년사를 통해 송구영신의 메시지와 올해 경영 환경 및 전략을 밝혔다. 수장들이 꼽은 경영 전략의 공통 키워드는 실행력, 지속가능한 성장, 신사업 및 R&D 등이었다.
석화기업 SK지오센트릭과 정유기업 SK에너지·SK엔무브·SK인천석유화학 등을 통해 석화산업을 영위하고 있는 SK이노베이션의 박상규 사장은 이날 신년사에서 “올해 경영환경 역시 엄중하고도 도전적일 것”이라며 “이 같은 백척간두(百尺竿頭) 상황에서도 모든 OC(사업자회사)와 CIC(사내독립기업), 경영진과 구성원이 ‘One Innovation’으로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사장은 AI(인공지능)와 DT(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를 통해 O/I(운영 개선) 실행력을 높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AI, DT를 활용한 성과를 넘어 올해는 한 발 더 나아가 △비즈니스 모델 혁신 △생산성 및 신뢰도 향상 △최적의 의사결정 체계 구축 등 구체적 과제들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같은 날 최안섭 SK지오센트릭 사장도 신년사를 통해 “올해도 녹록지 않은 한 해가 될 것이나, 내실을 다지고 기초 체력을 튼튼히 해 재도약 발판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며 “특히 올해는 심도 깊은 O/I를 통한 실행력 강화가 필요하고, 구매·생산·마케팅 전 분야에서 비용 효율화와 제품 포트폴리오를 개선해 본원적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역시 대외 환경이 올해도 녹록지 않다는 점을 언급하며 “생존을 위해서는 기존에 지속했던 방식이 아닌 명확한 현실 인식을 기반으로 행동 양식의 근본적인 변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신 부회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를 ‘실행의 해’로 요약하며,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포트폴리오 고도화를 추진하고, 차별적 경쟁력 확보를 위해 다양한 솔루션을 구체화하는 동시에 실행력 강화에 집중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그러면서 “모든 비용은 과거 관행에서 벗어나 제로베이스에서 면밀히 분석하고, 고객 경험 기반의 원가·제품 경쟁력을 바탕으로 동종업계 대비 영업이익률을 차별화해야 한다”면서 “투자 우선순위를 정교화해 최적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투입해 전사 재무건전성 또한 제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래 경쟁력을 위한 성과 중심 R&D(연구개발)로의 전환을 가속화함과 동시에, 3대 신성장 동력은 각 분야에서 확실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도록 ‘선택과 집중’을 통해 내실을 다져야 한다”며 “업무 전반에서 DX(디지털전환) 활용도를 높이고, 환경안전 중대사고 제로화 지속과 함께 탄소발자국 데이터의 DX화, 저탄소·친환경 제품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등 우리 사업을 운영하는 근본 역량도 키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4개 분기 동안 적자를 기록한 롯데케미칼은 기존 기초화학 중심의 사업구조를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중심 사업구조로 전환하는 작업과 유동성 확보 추진에 한창이다.
올해 정기 임원인사에서 ‘소방수’로 투입된 이영준 롯데케미칼 사장은 이날 신년사를 통해 “속도감 있는 사업구조 전환 추진과 본원적 사업경쟁력 확보를 위한 기능별 혁신활동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변화를 만들어 나가겠다”면서 구체적인 올해 방향성을 제시했다.
이 사장은 “신규사업 투자는 사업경쟁 기반 우위를 분석하고 시장관점·경쟁관점을 점검하며 전략적 의사결정을 진행할 것”이라며 “또, 본원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글로벌 사업관점에서 화학소재의 개발·생산·물류·재고·시장판매에 이르는 공급망을 단계별로 분석하고 경쟁력 혁신 목표를 설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이 사장은 롯데 화학군이 보유하고 있는 대형 글로벌 생산공장 구축 프로젝트 능력, 글로벌 전 지역 생산·마케팅 네트워크 보유 등 비즈니스 역량에 기반한 시너지를 적극 창출하고, 사업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는 연계 사업들을 찾아 미래성장의 투자를 지속함과 동시에R&D 네트워크, 연구원들의 역량개발, 우수 인재·전문가 리쿠르팅을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수장들이 공통적으로 ‘올해도 지속될 업황 어려움’을 언급했듯, 지난해 실적 감소 및 적자를 기록했던 석화업계의 올해 업황은 대내외적 환경으로 더욱 척박해진 상태다. 에틸렌 등의 중국발 공급 과잉이 지속됨과 동시에 환율이 1500원을 밑돌고 있으며, 국내에선 탄핵 정국 속 정치적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다.
다만 석화업계는 여러 해 전부터 지속해 온 고부가가치(스페셜티) 제품 확대와 더불어 비핵심 자산 매각 등 사업구조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초 배럴당 90달러까지 올랐던 두바이유가 지난달 70~73달러 수준까지 하락하고, 트럼프 2기 체제에서 셰일 오일 생산량이 확대되면 향후 유가가 더욱 하락해 석화산업의 원가 절감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정부 역시 지난달 내놓은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에 이어 업계 지원을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석화업계가 스스로 자구 노력을 해오고 있고 사업재편 의지도 충분한 것을 인지하고 있는 만큼 정부는 이를 촉진하도록 꾸준한 제도적 지원에 나설 계획”이라며 “업계가 사업재편 계획을 마련하면 관계부처와 신속히 지원하고, 실제 정책 수요를 바탕으로 올 상반기 후속대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