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의 선불식 할부거래 행위 제재에도 소비자 피해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선불식 할부거래 주무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와 선불식 할부거래업 등록을 허가하는 지방자치단체의 관리·감독 부족으로 소비자 피해를 키운다는 지적이다.
6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일부 선불식 할부거래업체는 폐업 후 이름만 바꿔 재가입을 유도하거나 허위로 상호 주소를 기재해 허술하게 운영하고 있다. 일부 소비자는 폐업한 상조회사가 상호를 바꿔 운영하는 것에 대해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지난 2022년 10월 폐업한 주식회사 케이비라이프에 13년형 상조 상품에 가입한 고민서(가명)씨는 “대기업의 이름을 내걸고 상조 서비스 가입 시 전자제품을 사은품으로 제공한다고 유도한 뒤 전자제품 렌탈 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명백한 소비자 기만”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유사 상호로 가입 유도
고씨는 “지난 2022년 주거래 은행과 같은 이름이라 대기업 자회사인 줄 알고 가입했다. 월 5만9800원을 13년간 납부하는 998만원짜리 계약이다. 케이비라이프 폐업 3개월 전에 가입했으며 결혼 준비 중 적금을 정리하다 폐업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이어 “폐업 사실을 인지한 뒤 해지를 요구하자 사은품으로 제공했던 에어팟, 애플 워치, 공기청정기에 대한 금액을 추가로 납부해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지금까지 160만원을 납부했지만 200만원을 더 납부해야 한다고 했다. 구매 의사가 없는 전자제품을 360만원을 주고 산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고씨는 신용 문제를 우려해 여전히 할부금을 납부하고 있다.
그는 “할부금을 한 달 미납한 적이 있다. 곧바로 채무 불이행이란 메시지를 받았다. 사회에서 신용 불량자가 어떤 불이익을 받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억울해도 할부금을 납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씨처럼 케이비라이프에 가입했던 김민우(가명)씨는 주식회사 한신라이프로부터 재가입을 유도하는 전화를 받았다. 한신라이프 역시 대기업과 유사한 상호다. 한신라이프는 고씨에게 “폐업한 케이비라이프를 이관했다. 재가입 후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이 이익”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씨는 한신라이프 홈페이지에서 대표의 이름이 폐업한 케이비라이프 대표의 이름과 동일한 것을 보고 재가입을 보류했다. 또 가입을 권유한 한신라이프 직원의 명함에는 케이비라이프가 운영 당시 등록했던 주소와 동일한 주소가 기재되어 있었다. 김씨는 한신라이프에 해명을 요구했지만 “이름만 같은 다른 대표다. 명함에 주소를 잘못 등록했다”는 답변만 들었다.
이후 한신라이프는 홈페이지 내 등록 주소를 서울시 노원구에서 경기도 구리로 수정했다. 쿠키뉴스는 한신라이프 홈페이지에 기재된 주소를 방문했지만 해당 건물은 여러 회사들이 모여 있는 ‘공유 오피스’였다. 공유 오피스 운영자는 한신라이프와의 계약은 이미 지난해 종료됐다고 말했다.
한신라이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케이비라이프와 한신라이프의 대표는 동일 인물이 맞다. 상조 상품에 가입한 고객들에게 계속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재가입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고객 응대 직원들이 실수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어 “최근 다른 곳으로 이사해 홈페이지 주소를 업데이트 하지 않은 것이고, 이사한 주소를 밝히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쿠키뉴스는 지난 7월 선불식 할부거래업자로 등록하지 않고 영업한 주식회사 리시스에 대해 최초 보도한 바 있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러한 위법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했다. 서울시는 선불식 할부거래업체에 대한 현장 점검을 강화하고, 고객 납입금 통지 제도에 대한 교육을 실시해 업체들이 법적 의무를 준수하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전자제품 속임 판매
그러나 선불식 할부거래업체 관계자는 주무부처의 관리·감독이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관계자는 “상조서비스 없는 장례는 없다. 부모님을 위해 상조상품을 가입하는 청년들에게 전자제품을 사은품처럼 판매하고 있는데 부실한 감독 때문에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022년부터 올해 8월까지 폐업한 상조회사로부터 돌려받지 못한 돈은 300억원에 달한다. 상조 서비스는 금융상품 중 ‘선불식 할부거래 제도’로 분류돼 현행법상 상조회사가 선수금의 50%를 은행에 예치해야 한다. 다만 상조회사가 금융사는 아니기 때문에 자산 운용 현황 공시나 충당금 적립 의무 등 상조 회사에 대한 별다른 규제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