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주는 숙제, 해내야죠”…박훈의 또 다른 얼굴 ‘하얼빈’ [쿠키인터뷰]

“변주는 숙제, 해내야죠”…박훈의 또 다른 얼굴 ‘하얼빈’ [쿠키인터뷰]

영화 ‘하얼빈’ 주연 배우 박훈 인터뷰

기사승인 2025-01-08 06:00:10
박훈. CJ ENM

스스로 인정할 만큼 다른 얼굴이 필요해서 두피 문신으로 헤어라인을 바꾸고, 잠꼬대를 할 정도로 일본어 연기 연습에 매진했다. 이젠 ‘밀리터리 유니버스’와 작별이라더니, 영화 ‘하얼빈’으로 완전히 끝을 낼 참이었나보다. 극 중 일본군 육군소좌 모리 다쓰오 역을 맡아 열연한 박훈을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날 제법 긴 머리로 나타난 박훈은 또 낯선 얼굴이었다. 작품에서는 스킨헤드였다. 이 스타일은 캐릭터의 잔인하고 서늘한 면모를 극대화했다. 우민호 감독의 제안이었다고 한다. 여기에 박훈의 한 끗이 더해져 섬뜩한 모리 다쓰오가 탄생했다.

“삭발을 이미 해봤었어요. 그래서 제가 삭발했을 때 얼굴을 너무 기억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제가 봐도 다른 얼굴이 필요했어요. 이게 연기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방식인데(웃음). 다른 느낌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두피 문신을 했어요. 라인을 다 바꿔버렸어요. 감독님이 너무 만족하시더라고요. 저도 결과물을 보고 잘했다 싶었어요. (제국주의에) 과몰입한 모습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기 좋았던 것 같아요.”

언어도 갈아 끼웠다. 낮고 굵은 음성으로 구사하는 일본어는 그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국적을 착각할 만큼 자연스러웠다. 이토 히로부미 역으로 함께 호흡한 일본 배우 릴리 프랭키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부담이 엄청 됐어요. 그래도 한국 작품에 쉽지 않은 배역으로 함께해준 프랭키라는 배우가 있었잖아요. 그분이 보시기에 불편함이 없고, 배우로서 존경을 담아 최선을 다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네이티브) 근사치에 다다르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일본 배우 겸 선생님한테 제 연기를 먼저 한국말로 설명한 다음에, 그 연기를 다시 일본어로 출력하는 방식을 택했어요. 저보다 그 선생님의 한국어 연기가 많이 늘었어요(웃음). 모자라겠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하얼빈’ 모리 다쓰오(박훈) 캐릭터 스틸. CJ ENM

모리 다쓰오는 신아산 전투에서 패한 자신을 살려준 안중근(현빈)을 이해하기 힘들 만큼 집요하게 쫓는다. 이러한 인물의 정체성은 반복해서 내뱉는 “안중근와 도코다(안중근은 어디에 있나)”라는 대사에 담겨 있다. 박훈은 “그렇지 않은 대사도 ‘안중근와 도코다’로 바꿨다”면서 “일본을 상징해야 하는 역할인데, ‘당신들 마음 속에 있었던 안중근의 정신은 어디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오락영화에서 만드는 빌런과는 다른 구조를 갖고 있어요. 빌런이 압도적인 악행을 저지르고 주인공은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이겨내는데, 여기에서 빌런의 존재감이 생겨요. 그런데 모리 다쓰오는 전개상 초반에 잡혀요. 악행을 크게 만들 수가 없는 역할이에요. 그래서 안중근을 원초적으로 쫓아야 했어요. 릴리 프랭키가 영화를 보고 만나자마자 바로 ‘안중근와 도코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이 대사가 들렸구나, 다행이다 싶었죠.”

박훈은 ‘하얼빈’이 소설도 웹툰도 아닌, 시 같은 영화라고 했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기까지의 과정을 “동지들이 안중근의 어깨에 하나씩 주고 간 느낌”이라는 자신만의 해석을 더했다.

“그래서 감독님이 말한 것처럼 ‘하얼빈’은 안중근과 동지들의 이야기라는 거예요. 이 거사는 안중근 혼자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동지가 함께했어요. 마지막에는 하늘에 있는 동지의 응원까지 받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시를 해석하는 것은 그 사람의 몫이겠죠? 그 여백을 어떻게 채워 넣는지도 그 사람의 상상이고요. ‘이게 맞다, 이게 틀리다’는 아닌 것 같아요.”

‘하얼빈’뿐만 아니라 영화 ‘서울의 봄’, ‘행복의 나라’, 드라마 ‘태양의 후예’ 등 어쩐지 군인을 꾸준히 연기하고 있는 그다. 타고난 피지컬과 뛰어난 캐릭터 소화력 덕분이겠지만, 이젠 새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 ‘밀리터리 유니버스’와는 안녕을 고하겠단다.

“다음 유니버스를 찾아보겠습니다(웃음). 뭐가 될진 모르겠지만 찍어놓은 작품도 있고 찍고 있는 작품도 있어요. 저한테 주어진 것을 하는 과정에서 제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려야 해요. 나라는 배우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 배우냐, 어떻게 변주를 가져갈 수 있느냐, 그게 또 제 앞에 놓인 숙제고 해내야겠죠.”

심언경 기자
notglasses@kukinews.com
심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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