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혁 감독님이 ‘임시완이라면 명기가 착해 보일 수 있다’라는 키워드를 주셨어요. 그걸 쫓아서 연기하려고 했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2에서 명기는 코인 투자 방송을 했던 유튜버다. 과거형인 까닭은 본인은 물론, 구독자들까지 잘못된 투자로 엄청난 손해를 보게 만들고 채널을 폐쇄했기 때문이다. 뿐만인가. 자신의 아이를 밴 여자친구 준희(조유리)의 연락도 받지 않는다.
지독한 회피형인가 싶었는데 게임에서 만난 준희에게는 또 다정하다. 사사건건 시비인 타노스(최승현)와의 몸싸움 역시 피하지 않는다. 선인인지 악인인지 명확히 규정할 수 없는 캐릭터다. 여기에는 배우 임시완의 말간 얼굴도 한몫했다.
9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임시완은 “명기의 방향성, 본질적으로는 인간의 착함과 나쁨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면서 찍었다”며 “명기가 착한지 나쁜지 모르겠다는 평가는 연기 칭찬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감독님이 생각하신 명기는 그 어딘가에 있는 사람이었던 게 아닐지 생각한다”며 “100% 착한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고, 늘 그런 선택을 하면서 사는 게 인간다운 모습이지 않나”라고 부연했다.
임시완은 명기를 타고난 악인이 아닌, 나쁜 선택을 자꾸 해서 나빠 보이는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명기는 현명하지 못해요. 본인의 선택들이 어리석고 나쁘게 비치게끔 결과를 내는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거예요. 사실 착한 면모는 보기 힘들죠. 굳이 찾는다면 준희에 대한 책임감? 말뿐일지라도 상황이 좋아지면 준희를 찾아가겠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여러 줄기로 뻗는 시즌2의 서사에서 명기와 타노스의 격돌은 빼놓을 수 없다. 명기의 방송을 보고 투자한 코인으로 거액을 날린 타노스는 시종일관 명기를 괴롭힌다. 그리고 이들의 갈등은 심각한 몸싸움으로 격화된다. 전개상 임시완은 ‘문제적 배우’로 언급되는 최승현과 밀접한 관계였다. 정작 제국의아이들 멤버였던 그에게는 빅뱅 출신 최승현은 ‘연예인의 연예인’이었다.
“대기실을 따로 쓰잖아요. 빅뱅을 잘 보지도 못할뿐더러 지나쳤을 때 인사하는 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었어요. 또 광희 얘기가 나오는데(웃음). ‘빅뱅이 네 옷 본 것 같다’고 하고, 이것만으로도 화두가 되는 가수였죠. 대단한 존재였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연예인의 연예인’을 찔렀다”고 운을 뗀 임시완은 일명 ‘포크 신’ 비하인드도 전했다. “연기자들이 액션에 들어가면 그 순간이 가장 큰 기회이자 미쳐야 하는 때예요. 정신없이 하다가 서로 공중에 떴는데, 넘어지면서 승현이 형 갈비뼈가 부러졌어요. 부상 투혼이었죠. 추성훈 형과 복싱하다가 갈비뼈가 부러진 적이 있는데, 그게 얼마나 아픈지 알아요.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정도예요. 그때 멈춰야 하는 부상인데 아랑곳하지 않고 촬영을 진행했어요. 남다르다고 생각했죠.”
최승현의 부상 투혼은 갸륵하나, ‘발연기’ 논란을 덮을 정돈 못 되는 분위기다. 임시완은 최승현의 연기를 평가해 달라는 요청에 “연기에는 절대적인 평가가 없으니까 호불호가 나뉠 수 있다”고 조심스레 답했다. 그러면서 “저는 타노스 역을 못 할 것 같다”며 “랩을 보면서 절대 못 한다고 느꼈고, 나라면 작품이 나올 쯤 SNS 접고 산속에 숨었을 것”이라 말했다.
임시완은 2012년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적도의 남자’에서 기대 이상 연기력으로 주목받고, 2014년 ‘미생’으로 배우로서 입지를 확실히 굳혔다. 그리고 10년 넘게 흐른 지금, 글로벌 메가 히트작 ‘오징어 게임’ 주연에 이름을 올릴 만큼 성장했다. 이는 현장에서 ‘선배 연기자’ 역할을 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이번 촬영 현장은 ‘배움의 장’이었다.
“후배의 위치에 있었는데 저를 선배라고 부르는 현장 관계자분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선배들이 현장을 다루시는 방법이 제일 궁금했어요. 송영창 선배님 같은 경우는 나이 차이가 꽤 나는데도, 분위기를 많이 풀어주셨어요. 이병헌 선배는 위트가 있으셔서 웃긴 농담을 던지세요. 이정재 선배님 같은 경우는 상대방의 호흡을 중요하게 생각해 주시고요.”
무엇보다 ‘오징어 게임’ 시즌1 팬이었던 그에게 황동혁 감독과 함께한 시즌2는 모든 순간이 ‘선물’이었다. “황동혁 감독님은 철저하게 준비하시고, 그 완벽함 속에서도 더 나은 게 없는지 고민하시고, 현장에서는 여유로움까지 보여주시니까요. 제게 이상향을 보여주신 것 같아요. 또 영희부터 침대 프레임, 병정들까지 다 구현된 걸 직접 보니까, ‘아이돌을 보는 팬들의 마음이 이거구나’라고 처음 깨달았어요. 실제로 영희 목이 돌아가니까 감동스럽더라고요(웃음). ‘성덕(성공한 팬)’이 된 느낌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