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정국 속에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여권 내 차기 주자로 꼽히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행보가 주목된다. ‘오세훈표’ 핵심 정책 추진에 속도를 냄과 동시에 사회 각 분야를 아우르는 메시지를 내며 사실상 대선 물밑 준비에 돌입했다.
오 시장은 지난 4일 시청에서 열린 신년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출마 여부’를 묻는 말에 “(대통령 탄핵과 관련한) 헌재 결정이 난 이후에 답변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현직 시장으로서 시정에 전념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출마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고 있다. 지난달 25일 TV조선 시사 프로그램 ‘강적들’에 토론 패널로 출연한 오 시장은 “출마 의사가 100%인 것 같다” “이미 마음을 굳힌 것 같다”는 다른 패널들의 평가에 웃어 보이며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았다. 지난달 22일 서울시 출입기자 대상 신년 기자간담회에서도 조기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교통·주거·안보’…주요 정책 드라이브
대선 출마에 대한 말을 아끼면서도 기후동행카드‧미리내집 등 서울시 간판 정책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 시장의 ‘밀리언셀러’ 정책으로 불리는 ‘기후동행카드’ 사업은 서울을 넘어 전국으로 확장 중이다. ‘기후동행카드’는 월 6만5000원에 서울 시내 지하철, 버스, 따릉이(공공자전거)를 횟수와 관계없이 이용할 수 있는 오세훈표 교통 정책 중 하나다.
서울시는 기후동행카드 출시 이후 1년간 시민들 요구를 반영해 사용 범위를 넓히고 결제 수단을 확대하는 등 편의성을 높일 계획이다. 상반기 중 성남, 의정부 지하철 적용을 목표로 시스템을 개선에 나서고 있다.
청년과 신혼부부의 내집 마련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도입된 ‘미리내집’ 공급 유형 확대에도 나설 방침이다. 기존 아파트에서 다세대‧다가구 주택까지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오 시장은 지난달 22일 “미리내집을 연간 4000가구 정도 신혼부부에게 공급하는데, 이는 새로 결혼하는 연간 4만 쌍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라며 “5분의 1까지 수용하면 좋겠다고 판단해 매입임대주택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교‧안보‧경제’ 보폭 넓히는 오세훈
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오 시장의 발언 빈도도 늘었다. 오 시장은 지난달 2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한은 핵보유국’(Nuclear Power) 발언을 앞두고 SNS를 통해 “한국의 허용 없이 한반도에서 어떤 핵 협상도 이뤄질 수 없음을 미국과 북한 모두에 분명히 알려야 한다”고 밝혔다. 신년 외신기자 간담회에서도 “지금 바로 핵 개발에 돌입하기는 어렵더라도 일본 수준의 핵 잠재력은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사회 분야 관련해서도 꾸준히 의견을 내고 있다. 오 시장은 2025년 신년사에서 “규제 권한의 절반을 덜어내겠다는 각오로 ‘규제와의 전쟁’을 추진하겠다”며 의지를 드러냈다. 이후 시는 한 달 만에 8개의 규제를 철폐하며 가속 폐달을 밟고 있다. AI 반도체 산업 육성에도 목소리를 냈다. 그는 전날 AI 산업육성 전략 자문회의에 참석해 “AI로 승부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인적 자원 확보와 데이터 가공을 최고조로 올려야 한다”며 “다음 주 초 AI 비전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 리스크‧계엄 퍼스널리티”…‘이재명 때리기’ 집중
야권 유력 후보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해서는 연일 날선 비판을 내고 있다. 이 대표의 대항마로서 이미지를 부각시키면서도 여권 지지층의 호감도 상승을 염두에 둔 행보로 풀이된다.
오 시장은 4일 SNS를 통해 “정부와 여당이 진작부터 요구했던 민생 현안에 요지부동이었던 이재명 대표가 지지율이 떨어지고 자신의 재판을 앞두고서야 뒷북을 치는 행태를 보인다”고 직격했다. 이 대표가 공직선거법 조항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것에 대해서는 “대장동, 대북 송금 등 여러 사건에서 보여 온 일관된 ‘지연=생존’ 공식”이라고 비판했다.
지지층 확장 위해선…전문가 “입장 명확히 해야”
다만 낮은 지지율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 야권 유력 후보인 이 대표와의 1대1 대결에서는 비등한 지지율을 보이기도 했지만, 다자 후보 호감도 조사에서는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어서다.
여론조사기관 에이스리서치가 뉴시스 의뢰로 지난 1~2일 실시한 ‘차기 대통령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오 시장은 6.4%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해당 조사에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1.4%로 1위를 기록했으며,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20.3%로 뒤를 이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6.7%, 홍준표 대구시장은 6.3%,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2.6% 순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는 오 시장이 여권 대선 주자로 면모를 부각하기 위해서는 윤 대통령에 대한 명확한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근 시사평론가는 “오세훈 시장이 대권에 참여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 건 분명하다”면서도 “지난 2016년 탄핵 정국과는 달리 탄핵 반대 지지율이 높아 선뜻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나서기 힘든 상황이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오 시장이 지지층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정해야 한다”며 “대통령을 지킬 건지, 계엄 선포를 사과할 건지 분명한 노선을 정해야 보수 대권 주자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