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커제 울린 ‘사석룰’, 한국 바둑리그에서 비롯됐다

[단독] 커제 울린 ‘사석룰’, 한국 바둑리그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바둑리그 준PO서 ‘분쟁’ 발생…개정 논의 시작
현재 사라진 ‘바둑규칙 및 경기규정 개정 위원회’서 개정
개정 위원회 이끌었던 위원, 쿠키뉴스에 “인터뷰 안 하겠다”

기사승인 2025-02-06 13:55:33 업데이트 2025-02-06 14:14:54
한국물가정보 당이페이 9단(왼쪽)과 수려한 합천 주장 원성진 9단이 격돌한 2023-2024 KB국민은행 바둑리그 준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사석과 관련된 분쟁 상황이 있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숱한 논란을 양산하고 3개월 만에 사라진 이른바 ‘사석룰’에 대한 제정 논의가 지난해 바둑리그에서 시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6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5월8일 열린 2023-2024 KB국민은행 바둑리그 준플레이오프 한국물가정보-수려한 합천 대결에서 발생한 이의제기 사태가 ‘룰 개정’ 단초가 됐다.

해당 경기는 정규시즌 3위 한국물가정보와 4위 수려한 합천이 벌인 준PO 1라운드 제3국으로, 합천의 주장 원성진 9단과 물가정보 ‘중국 용병’ 당이페이 9단이 격돌한 대국이었다. 이 대국은 307수까지 가는 혈투 끝에 당이페이 9단의 ‘반집승’으로 막을 내렸다. 당시 바둑TV 생중계를 진행한 목진석 해설위원이 “엄청난 바둑”이라고 혀를 내두를 정도의 명승부였다.

문제는 대국 도중 당이페이 9단이 ‘사석(따낸 돌)’을 통의 뚜껑에 보관하지 않고 손에 쥔 상태로 대국을 하면서 시작됐다. 치열한 패싸움이 끝나고 형세판단에 열중하던 원성진 9단은 상대 대국자인 당이페이 9단이 갑자기 들고 있던 사석 1개를 통의 뚜껑에 놓자 크게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이 장면은 한국기원 바둑TV 생중계를 통해 전파를 탔다.

대국이 당이페이 9단의 반집승으로 끝난 직후, 원성진 9단은 이 문제를 지적했다. 합천 팀에선 심판에게 공식적으로 항의했고, 당시 심판은 대국을 모두 마친 당이페이 9단에게 구두로 ‘주의’를 주는 선에서 조치를 마무리했다. 바둑리그 관계자는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당이페이-원성진 대국이 지난해 11월 사석 관리 규정이 개정된 결정적인 사건”이라며 “당시 문제가 된 상황에 대해 심판들이 협의해 룰을 개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기원 측은 이를 부인했다. 한국기원 관계자는 쿠키뉴스에 “당이페이 건으로 해당 룰이 생긴 건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서 “논의 당시에도 그 바둑에 대해서 얘기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특정한 사건으로 룰이 개정된 것은 아니고 그동안 사석 관련 한국 선수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들이 여러 차례 있었고 이번에는 규정으로 넣어야 한다는 의견들이 있어 개정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3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2025 제1차 긴급 운영위원회가 열렸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한편 사석 관련 규정을 개정하는 논의는 쿠키뉴스 취재 결과 지난해 7월부터 시작됐다. 당이페이-원성진 대국이 끝나고 약 2개월가량 지난 시점이다. 한국기원에서는 ‘바둑규칙 및 경기규정 개정 위원회’를 만들어 룰 개정을 추진했고, 그 결과 11월에 개정된 규정이 발표됐다.

불과 3개월 만에 사실상 폐지된 해당 규정을 잠시 살펴보면, 신설된 규정은 제4장 벌칙 제18조 경고 ‘사석을 통의 뚜껑에 보관하지 않는 경우’에 ‘심판은 반칙행위자의 돌 2개를 상대 선수 사석통에 추가하고 기록지에 기록한다’는 내용이다. 다만 이 규정은 현재 한국기원이 효력을 정지하기로 결정하면서 3개월 만에 없어지게 됐다.

쿠키뉴스는 ‘바둑규칙 및 경기규정 개정 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했던 프로기사에게 사석 규정 개정 논의가 어떤 계기로 시작됐는지, ‘주의’ 처분이 아니라 ‘경고’와 ‘벌점 2집’을 부여하기로 한 결정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 물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해당 위원은 쿠키뉴스에 “규정은 많이 보도돼서 더 (얘기)할 게 있을까 한다”면서 “규정에 대한 이야기는 제가 인터뷰를 안 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고 전했다.

한편 한국기원은 지난 3일 긴급 운영위원회를 열고 “반외 규정에 의한 경고 누적 반칙패를 없애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나. 다만 경고와 함께 부여됐던 ‘벌점’ 규정에 대해선 아직도 정해진 게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기원 관계자는 이날 쿠키뉴스에 “벌점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면서 “세부적인 논의 및 검토가 필요해 우선 가까운 농심배(백산수배 포함), 쏘팔코사놀배 등 한국 주최 세계대회에서 해당 규정에 대해 개정 전까지 잠시 효력을 정지하고, 심판의 주의(패널티 없음)로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영재 기자
youngjae@kukinews.com
이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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