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만에 부활한 ‘더 폴’, 한국서 이유 있는 장기 레이스 [들어봤더니]

16년 만에 부활한 ‘더 폴’, 한국서 이유 있는 장기 레이스 [들어봤더니]

6일 CGV용산서 기자간담회
장기 흥행에 감독 첫 내한
28년 제작 비하인드 공개
“한국 여성 영원히 사랑하고파”

기사승인 2025-02-06 16:40:34
타셈 싱 감독이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더 폴: 디렉터스 컷’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영화사 오드(AUD) 제공

“겨우 기던 아이가 20년 지나고 보니까 달리고 있다. 믿기지 않는다. 다시는 못 만들 영화고, 누구도 만들 수 없는 영화다.” 타셈 싱 감독이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더 폴: 디렉터스 컷’ 기자간담회에서 감격과 자부심이 뒤섞인 소감을 전했다.

‘더 폴: 디렉터스 컷’(이하 ‘더 폴’)은 스턴트맨 로이(리 페이스)가 호기심 많은 어린 소녀 알렉산드리아(카틴카 언타루)에게 전 세계 비경에서 펼쳐지는 다섯 무법자의 모험을 들려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2006년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으로 국내 개봉했고, 18년 만에 4K 리마스터링을 거쳐 다시 관객을 만났다.

극단적인 비주얼 스토리텔링, 18년 만에 때 만났다

로이의 엉성한 서사시는 아이 알렉산드리아의 상상을 만나 화려하게 펼쳐진다. 의상, 소품의 색감부터 나비 산호섬, 수상 궁전 등 배경까지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은 구석이 없다. 미적 감각을 뽐내기 힘든 병원에서조차 햇빛과 그림자를 활용해, 로이와 알렉산드리아의 첫 만남을 환상적으로 그려낸다.

극강의 미장센을 빼놓고 논할 수 없는 이 영화는 타셈 감독의 유년 시절에서 출발했다. 타셈 감독은 “어릴 때 히말라야에 있는 기숙학교에 다녔다. 아버지는 이란에서 엔지니어로 일하셨다”며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돼서 이해할 수 없는 영화를 많이 봤다. 제가 비주얼 스토리텔링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자연스럽다”고 밝혔다.

더군다나 4K로 볼 수 있다니, ‘더 폴’의 압도적인 영상미에 대한 평만큼은 엇갈리지 않는다. 타셈 감독은 “처음 완성한 버전이 4K였지만, 당시만 해도 영화관에서 4K를 상영하기 힘들었다”며 “오래 갈 영화라고 생각해서 최신 기술로 만들었다”고 비화를 전했다.

더 놀라운 점은 CG가 아닌 실제라는 것이다. 자그마치 28개국 로케이션에 촬영 기간만 4년이다. 이토록 공들인 보람이 비로소 빛을 발하는 모양새다. 기술의 힘을 빌리지 않고 구현한 시퀀스에서는 세월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 타셈 감독은 “마법 같은 공간을 선택했었다”며 “CG를 사용하면 모자 위에 또 모자를 쓰는 느낌이어서 그러고 싶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이어 “개인적으로는 CG를 좋아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세트장조차 사용하지 않았다. 난 극단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영화 ‘더 폴: 디렉터스 컷’ 스틸. 영화사 오드(AUD) 제공
영화 ‘더 폴: 디렉터스 컷’ 스틸. 영화사 오드(AUD) 제공


돈도 사랑도 잃고…28년 산고 끝 세상에 나온 자식

작품 탄생까지 고난의 연속이었다. 제대로 된 각본 없이 가이드만 있는 ‘더 폴’에 선뜻 투자할 이는 없었다. 타셈 감독은 “아이(알렉산드리아 역 배우)를 찾게 되면 이야기를 만들 거라고 했다. 몇 개국에서 촬영하냐고 물어보면 모르겠다고 했다”며 “이런 식으로는 투자를 받기 힘들다”고 회상했다.

이 가운데 카틴카 언타루를 만났다. 9년을 찾아 헤맨 알렉산드리아였다. 이 만남이 작품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타셈 감독은 “루마니아에서 우연히 발견했고, 바로 형에게 지금 당장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며 “28년 동안 영화를 만들었고 17년간 로케이션 헌팅으로 고민했는데 만난 그 순간부터 영화를 만들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유명 감독이자 타셈 감독의 오랜 친구인 데이비드 핀처, 스파이크 존즈의 도움도 있었다. 타셈 감독은 “데이비드 핀처가 ‘광고 일을 하는 감독은 꼭 영화를 만들겠다는 꿈을 갖는데, 당신이 유일하게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영화를 만든 유일한 멍청이가 나라고 답했다”며 웃었다. 이어 “핀처와 존즈에게 영화를 보여줬는데 마음에 들어 했다”며 “비평가 반은 (작품을) 공격하는 상황에서 이름을 올릴 수 있을지 물어봤는데, 어떠한 보상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줬다”고 감사를 표했다.

영화 팬이라면 흥미로울 만한 인물 설정 비하인드도 밝혔다. 여자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받고 ‘더 폴’을 준비했던 타셈 감독은 “맨 처음 생각한 악당은 방에 있던 노인이었다. 그런데 주인공이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에게 갔다는 것을 알면 훨씬 더 상심이 크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디어스를 (작품 속 영화 주연인) 남자 배우로 바꿨다”고 털어놨다.

타셈 싱 감독이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더 폴: 디렉터스 컷’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영화사 오드(AUD) 제공

‘기생충’·‘올드보이’처럼 특별한 ‘더 폴’, 그리고 더 특별한 한국

타셈 감독의 내한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관객에게 직접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 위함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재개봉 7주 차에도 장기 흥행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에는 ‘10만 관객 돌파’라는 놀라운 성과도 냈다. 이에 타셈 감독은 “‘더 폴’이 부활한 것 같다”며 “장애가 있는 아이가 있다.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고 겨우 기어가는 아이다. 그 아이가 20년 지나고 보니 갑자기 달리고 있는 것”이라며 흥분했다.

이제야 주목받고 있는 자식 ‘더 폴’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타셈 감독은 “처음 공개했을 때 왜 안 좋아했는지 모르겠다”며 “어떤 영화와도 똑같은 게 없는 새로운 영화다. 패턴을 벗어났을 때 그만의 장점이나 가치가 있다. ‘기생충’이나 ‘올드보이’도 기존과 다른 것을 보여줘서 사람들이 열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당시 관객의 기대와 달랐던 것 같다”고 인정했다.

타셈 감독은 20년 가까이 된 영화가 전국 66개관, 좌석수 1만 5025석의 열세를 딛고 마니아층을 확보할 수 있었던 이유를 지나온 세월로 봤다. 타셈 감독은 “패션이 20년 뒤 다시 레트로로 유행하는 것과 같다”며 “‘더 폴’에 열광하는 사람이 있는지 몰랐는데, 토론토영화제를 갔더니 다시 보고 싶다고 하더라. 20년 전 그토록 영화를 알리고 싶을 때 어디 계셨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나 10살이었다’고 하더라. 그때 전혀 다른 새로운 세대가 이 영화를 원하는 것을 깨달았다”고 분석했다.

“감사합니다”라고 한국어로 인사한 타셈 감독은 수준 높은 한국 상영관, 주 소비층인 한국 여성 관객에 대한 찬사도 잊지 않았다. “한국에서 보니까 4K로 의도했던 점이 잘 살더라”며 “제대로 된 스크린에서 봐야 하는데 영화관이 너무 좋다. 런던 아이맥스보다 훨씬 좋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 “많은 여성 관객이 좋아해 주신다”며 “아기 ‘더 폴’이 잘 달릴 수 있게 해주신 한국 여성을 영원히 사랑하고 싶다”고 전했다.

심언경 기자
notglasses@kukinews.com
심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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