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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간 첨예한 대립으로 1년8개월째 국회서 계류됐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드디어 국회 문턱을 넘었다. AI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 등 ‘전력 수요 100GW(기가와트)’라는 뉴노멀 시대에 대비할 전력망 확충 등 시급한 과제 해결을 위한 움직임이 속도를 낼 전망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19일 전체회의를 열고 2024∼2038년 적용되는 11차 전기본 보고를 받았다. 오는 21일 전력정책심의회를 거쳐 이르면 이달 중 전기본을 최종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15년간 적용되는 전기본은 2년마다 업데이트돼 새로 마련된다. 장기 수급 전망을 바탕으로 발전 설비를 어떻게 채울지 계획을 담은 문서다. 이번 11차 전기본은 당초 2023년 하반기쯤 수립돼야 했으나 여야 갈등으로 미뤄지다 지난해 5월 실무안을 발표하고도 합의점을 찾지 못해 오늘에 이르렀다. 다만 지난 17일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에서 이른바 ‘에너지3법’으로 불리는 전력망확충법·고준위방폐장법·해상풍력특별법이 모두 통과되면서 전기본의 보고 통과 가능성도 일찌감치 제기돼 왔다.
11차 전기본은 반도체 등 첨산산업 발전, AI 데이터센터 건설 붐, 전기차 보급 확대 등 전기화 전환 등 요인으로 전력 수요가 과거보다 급증할 것으로 전망한 뒤 원전, 태양광, 풍력, 수소 등 무탄소에너지를 중심으로 전기 수요를 충족하려는 목표를 제시했다.
정부는 11차 전기본에서 전기 수요가 연평균 1.8%씩 빠른 속도로 증가해 2038년 목표 수요가 129.3GW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첨단산업(1.4GW), 데이터센터(4.4GW), 수소환원제철 도입과 전기차 보급 확대로 인한 산업 등 산업과 일상의 전기화 전환(11GW) 등 과거에는 없던 새로운 추가 수요가 생길 것으로 보고 이 같은 요인도 반영했다.
이러한 수요 급증에 발전 설비를 안정적으로 늘려가되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양축으로 2038년 무탄소 에너지 발전 비중을 약 70%까지 올려 탄소중립 전환에 가속도를 붙이는 방향으로 계획을 설계했다.
이 방안이 확정되면 재생에너지 발전과 원전을 중심으로 한 무탄소 전원 비중은 2023년 39.1%에서 2030년 53.0%를 거쳐 2038년 70.7%까지 늘어나게 된다.
원전과 재생에너지 비중은 각각 31.8%, 18.8%를 각각 기록하고 나서 2038년 35.2%, 29.2%로 높아진다. 증가율로는 재생에너지 확대 폭이 크다. 이 밖에 현재 연구·도입 단계인 수소·암모니아 발전 비중도 2030년 2.4%에서 2038년 6.2%로 확대된다.
무탄소에너지 확대 방침에 따라 11차 전기본 기간 원전과 재생에너지, 수소 관련 발전 시설의 대대적 확충이 추진된다. 우선 각 1.4GW 설비용량의 원전 2기를 2037∼2038년 도입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이런 계획이 최종 확정되면 신한울 3·4호기 건설 계획이 반영된 2015년 7차 전기본 후 10년 만에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이 마련되게 된다.
당초 11차 전기본 실무안은 3기의 원전을 짓는 방안을 담았지만 국회 보고 지연 과정에서 재생에너지 확대 필요성을 강조한 야당의 입장을 반영해 정부가 원전 1기 건설을 유보하는 쪽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정부는 계획이 확정되면 이른 시일 내 부지 선정 등 신규 원전 선정 절차에 돌입한다는 방침이다. 또, 2035∼2036년에는 ‘차세대 미니 원전’인 SMR에도 0.7GW 물량이 배정됐다.
재생에너지의 경우, 대규모 개발이 가능한 해상풍력발전 보급에 강한 드라이브를 거는 가운데 이격 거리 규제 완화 등을 수요지인 산단을 중심으로 태양광 발전 설비 설치도 촉진할 방침이다. 11차 전기본은 2023년 30GW이던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용량을 2030년과 2038년 각각 78GW, 121.9GW로 늘린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정부는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의 조화’를 추구한 11차 전기본이 확정되면 203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 무탄소에너지 시대에 본격적으로 열려 화석연료 해외 의존도를 줄이고 에너지 안보를 향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