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리그가 또다시 잔디 문제에 직면했다. 클럽 월드컵, 아시아 챔피언스리그(AFC) 등 국제 대회 일정 때문에 올 시즌 개막을 2월로 앞당겼는데, 이에 잔디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불만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세계적 트렌드에 맞춰, 가을에 개막해 봄에 끝나는 추춘제 전환을 검토하고 있는 K리그지만 이런 환경에서는 쉽지 않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서울과 김천은 지난 3일 오후 2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1 2025’ 3라운드 경기에서 0-0으로 비겼다.
이날 양 팀은 유효슈팅 단 2개를 기록하며 제대로 된 경기력을 보이지 못했다. 경기력이 떨어지니, 위협적인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수준 높은 경기를 기대했을 2만4889명의 관중들은 빈손으로 돌아갔다.
처참한 경기력의 원인은 잔디였다. 이날 상암 경기장의 잔디는 눈에 띄게 파여있었다. 린가드, 이동경 등 양 팀 주요 선수들은 푹 파인 잔디에 고전했다. 중요한 타이밍 때 발이 잔디에 걸리면서 슈팅, 패스 정확도가 크게 떨어졌다. 튀어나온 잔디에 맞고 통통 튀는 볼 때문에, 트래핑 실수도 잦았다. 특히 린가드는 홀로 뛰다가 잔디에 걸려 발목을 다치기도 했다.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김기동 감독은 경기장 잔디에 대해 작심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1라운드부터 나왔던 문제다. 상암뿐만이 아니라 다른 구장도 마찬가지다. 리그가 추운 날씨에 일찍 시작하면서 잔디가 얼었고, 선수들이 부상을 당할 수 있는 상황이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잔디가 안 좋은 상태에서 경기를 하다 보니 잔디도 빠르게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잔디가 너무 많이 파이다 보니 제 기량을 보일 수 없다. 윗분들이 리그 일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면서 “일단 시작했으니, 잔디에 신경을 써서 선수들이 부상을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반 시설이 갖춰져야 한다. 유럽처럼 운동장 잔디에 열선이 깔려있어 잔디가 소프트한 상태면 겨울에 시즌을 시작해도 상관없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정정용 감독 또한 잔디 문제를 간접적으로 언급하며 “팀이 원하는 게임 모델 중 하나는 후방 빌드업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실수가 나올 수밖에 없다. 축구 발전을 위해서라도 공을 소유하면서 빠른 템포의 경기를 하고 싶다. 하지만 이 환경에서는 쉽지 않다”고 꼬집었다.
최악의 잔디에서 직접 뛰고 있는 선수들의 불만도 크다. 정승원은 “양쪽 발목이 돌아갔다. 엄청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뛸 때마다 잔디를 인지하고 뛰어야 한다는 자체가 아쉽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잔디 때문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더 신경 써주셨으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잔디 문제가 대두된 건 이날뿐만이 아니다. 이승우(전북 현대)는 지난 광주와 2라운드 후 “정상적으로 경기할 수 있는 잔디가 아니”라면서 “땅이 얼어 킥을 제대로 찰 수 없었다. 선수들이 이런 환경에서 경기해야 한다는 게 안타깝다”고 잔디 상태를 비판했다.
결국 전북은 좋지 않은 잔디 때문에 ACL 홈경기 개최 불허를 통보받는 망신을 당했다. 전북 측은 “AFC로부터 전주월드컵경기장 그라운드의 잔디 상태 악화 등의 사유로 ‘ACL Two’ 8강 1차전 홈경기를 대체 구장에서 개최할 것을 요청받았다. 이후 ACL Two 8강전 전주월드컵경기장의 홈경기 개최를 위해 전주시설관리공단과 협의해 잔디 보수 및 교체 작업 등을 실시하고 향후 개선 계획과 함께 입장을 전하였으나 최종 불허됐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프로축구연맹은 현재 추춘제 전환을 검토 중이다. 유럽 5대 리그를 포함해 ACL 등이 추춘제로 운영되는 중이고 일본 J리그는 2026~2027시즌부터 추춘제 전환을 앞두고 있다. 국제 축구 대회와 주요 해외 리그 운영 등을 고려해 ‘추춘제 전환’을 카드를 꺼낸 셈이다.
하지만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한 추춘제 전환은 독이 될 수 있다. 김판곤 울산 HD 감독은 “인프라에 대대적인 투자를 할 필요가 있다. 열선을 깔고, 라이트도 경기장마다 설치해야 한다. 투자하면 개선될 수 있는데, 외국보다 투자가 낮다”고 언급했다. 추춘제 전환을 위해서는 단순히 일정을 바꾸기보다 근본적인 환경 개선을 우선해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