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정도면 신생팀 돌풍을 넘어 ‘태풍’이다. 바둑리그 ‘명장’으로 손꼽히는 박정상 감독이 이끄는 영림프라임창호가 창단 첫 해에 리그 선두에 올랐다. 잔여 경기 결과에 따라 챔피언 결정전 직행도 노려볼 만하다.
9일 오후 7시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 바둑TV에서 열린 2024-2025 KB국민은행 바둑리그 11라운드 마지막 4경기에서 영림프라임창호가 한옥마을 전주를 3-0으로 완파했다. 두 팀은 모두 이번 시즌 창단한 신생팀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영림프라임창호가 1위에 등극한 반면, 전주 팀은 이날 패배로 8개 구단 중 가장 먼저 포스트시즌 탈락이 확정됐다.
영림프라임창호는 창단 후 첫 1위 등극을 위해, 한옥마을 전주 입장에선 실낱같은 포스트시즌 진출 희망을 이어가기 위해 꼭 승리가 필요한 승부였다. 양 팀 감독은 이를 반영하듯 1국부터 주장을 등판시키는 승부수를 꺼내들었다.
바둑리그를 대표하는 두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강동윤 9단(영림프라임창호 주장)-원성진 9단(한옥마을 전주 주장) 대결에서 강 9단이 선취점을 따내면서 기세를 올렸다. 상대 전적에서 원 9단이 앞서 있었고, 중반 한 때는 강 9단에게 큰 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한국 랭킹 3위까지 올라서는 등 기세가 좋은 강 9단이 끝까지 냉정함을 발휘하면서 승리를 따냈다.
이어지는 대국은 양 팀 3지명 맞대결이었다. 영림프라임창호 3지명 송지훈 9단이 한옥마을 전주 3지명 나현 9단의 대마를 잡고 승리했다. 이 바둑 역시 전주 나현 9단이 이길 기회가 많았지만 승부처에서 집중력이 승패를 갈랐다.
3국에서 전주는 아껴뒀던 2지명 한승주 9단 카드를 꺼내들었다. 주장 강동윤 9단이 이미 등판한 상황에서, 2지명 박민규 9단을 포함해 영림프라임창호 팀의 모든 선수들이 한 9단에게 상대 전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그러나 영림프라임창호 박정상 감독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중국 용병’ 당이페이 9단을 오더지에 적어냈다. 바둑TV 중계진에서도 “당이페이 9단의 모습은 검토실에 보이지 않았다”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최종국이 된 3국에서 전주 2지명 한승주 9단은 영림프라임창호의 용병 당이페이 9단을 상대로 중반까지 훌륭한 내용으로 경기를 지배했다. 그러나 ‘10초 피셔’의 늪에 빠져 실수를 연발하면서 상대에게 기회를 헌납했고, 당이페이 9단은 역전에 성공한 이후 완벽한 마무리를 선보였다. 박정상 감독의 용병술이 빛난 승리였다.

이날 승리로 영림프라임창호는 리그 선두였던 원익과 7승4패로 팀 전적이 같아졌고, ‘개인 승패차’에서 앞서 창단 이후 처음으로 1위에 올랐다. 2위 원익은 7승, 3~5위 정관장·합천·영암이 모두 6승으로 한 게임 차로 선두 그룹을 추격하고 있는 만큼, 바둑리그 막판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창단 첫 해에 팀을 1위에 올린 박정상 감독은 쿠키뉴스에 “선수들이 팀 훈련도 열심히 하고 있고, 다들 의욕이 충만해 분위기가 좋다”면서 “아직 시즌 중인만큼 끝까지 집중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잡겠다”고 전했다.
깜짝 등판한 당이페이 9단에 대한 이야기도 전했다. 박 감독은 “당이페이 선수는 본인이 출전을 하지 않을 때도 항상 팀 경기를 챙겨보고 결과에 따라 바로 연락이 올만큼 팀의 일원으로 융화됐다”면서 “한국에 올 때 팀 훈련도 함께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박 감독은 “어제 당이페이 9단이 한국에 와서 호텔에 도착하니 밤 1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면서 “오늘 대국은 초반에는 다소 좋지 않았지만 중반 이후 안정감을 보여줬다”고 총평했다.
영림프라임창호 ‘맏형’인 주장 강동윤 9단은 승리 후 인터뷰에서 “팀원들과 함께 훈련하면서 실전 대국도 하고 공부도 하고 있지만, 그보다 운이 확실히 많이 따르고 있다”는 겸손한 소감을 전했다. 이어 강 9단은 “저희 팀은 비밀스러운 오더를 좋아하고 방송으로도 그게 재미 요소일 것 같아서 앞으로도 당이페이 9단의 깜짝 등판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번 시즌 바둑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강동윤 9단은 지난 2월 리그에서만 3전 전승을 거두면서 3월 발표된 랭킹에서 신진서 9단(1위), 박정환 9단(2위)에 이어 3위에 올랐다. 강 9단의 3위 복귀는 2012년 4월 이후 12년 11개월 만이다. 강 9단은 “영광스러운 랭킹”이라는 소감을 전했다.

2국에 등판해 귀중한 승점을 따내면서 팀 승리를 견인한 영림프라임창호 3지명 송지훈 9단 역시 강 9단을 향해 “주장이 든든해서 제가 편한 마음으로 둘 수 있었다”고 칭찬했다. 이어 송 9단은 “초반에는 확실히 나쁘다고 생각했는데, 중반에 중앙 집을 크게 키우면서 승부로 갔다. 상대가 타개를 잘 했다면 어려웠을 텐데 저도 운이 많이 따랐던 것 같다”는 감상을 밝혔다.
이어지는 12라운드에서 영림프라임창호는 ‘신진서의 팀’ GS칼텍스와 격돌한다. 송 9단은 “지금 저희 팀이 굉장히 기세가 좋다”면서 “GS칼텍스는 세계 랭킹 1위 신진서 9단이 있는데, 제가 신 9단과 둘 수 있으면 좋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2024-2025 KB국민은행 바둑리그는 총 14라운드 ‘더블 리그’로 진행되며, 상위 네 팀이 스텝래더 방식으로 포스트시즌을 펼쳐 최종 순위를 결정한다. 정규리그는 매주 목~일요일 진행되며, 대국 시간은 오후 7시에 1국이 시작하고 매 대국 종료 후 5분 이내에 다음 대국이 진행된다.
제한시간은 기본 1분에 추가시간 10초 피셔(시간누적) 방식이 도입됐고, 5판 3선승제로 치르는 모든 라운드 경기에서 3-0 또는 3-1 스코어가 나올 경우 잔여 대국은 진행하지 않는다. 팀 상금은 우승 2억5000만원, 준우승 1억원, 3위 6000만원, 4위 3000만원이다. 각 팀이 자율 분배하는 정규 시즌 대국료는 매 라운드 승패에 따라 승리 팀에 1400만원, 패배 팀에 700만원이 지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