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출 수요가 들썩이고 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대란’ 부활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당국은 신중한 입장이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에서 새로 취급된 주택구입자금 목적의 신규 주택담보대출은 모두 7조4878억원으로 집계됐다. 1월 5조5765억원보다 34.3% 늘었다. 5대 은행 주담대 취급액 7조4878억원은 영끌 열풍이 한창이던 지난해 9월(9조2088억 원) 이후 최대치다.
지난해 금융권 전체 가계대출은 4∼7월에 4조∼5조원씩 늘어나다가 8월 증가폭이 9조7000억원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억제책을 펴면서 9∼11월 증가폭이 5조∼6조원, 12월 2조원대로 떨어지고 1월에는 전월보다 9000억원 감소했다.
5대 시중은행 신규 주담대 추이를 살펴보면 지난해 △10월 6조6200억원 △11월 4조8300억원 △12월 4조9400억원에 이어 올해 들어서는 △1월 5조5800억원으로 집계됐다.
뿐만 아니다. 신규 주담대 중 정책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떨어지는 추세다. 정책 대출은 정부가 저소득자·신혼부부 등 실수요자에게 저리로 지원하는 대출이다. 지난달 정책대출 비중은 36.6%로 두달 연속 하락했다. 정책대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해 12월 54.6%, 지난 1월 44% 였다. 정책대출 비중이 낮아졌다는 것은 실수요보다는 고가, 2주택 이상 보유 등 투자 목적 대출이 늘었을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시장에서는 토지거래허가제 완화와 대출금리 하락이 겹쳐 대출 수요를 자극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8~9월 발생했던 신규 주담대 급증 사태가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12일 토허재 해제를 발표했는데, 이후 서울 아파트 가격 오름폭은 커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지난 6일 공개한 ‘3월 첫째 주(3일 기준) 전국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 조사’에 따르면 강남 3구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 대비 급등세를 보였다. 송파구가 0.68% 급등하며 서울의 25개 자치구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강남구(0.52%)와 서초구(0.49%)가 2·3위를 각각 차지했다. 이후 한동안 침체됐던 비강남권 거래량도 증가하는 등 그 여파가 번지고 있다.
또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하 기조와 당국 압박으로 시중은행 대출금리도 내려간 상태다. 금융당국은 앞서 한은 기준금리 인하를 소비자들이 체감할 때가 됐다면서 은행들을 재차 압박했다. 한은 기준금리 인하 하루만에 0.25%p 대출 금리를 하향 조정한 우리은행을 시작으로, 신한은행은 오는 14일부터 가계대출 가산금리를 최대 0.2%p 하향 조정한다. 하나은행은 지난 10일부터 혼합형 주담대 상품 가산금리를 0.15%p, 농협은행은 지난 6일부터 비대면 주담대 금리를 0.2%~0.3%p 각각 내렸다.
은행권에서도 신규 주담대가 증가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최근 신축 아파트 입주물량 증가에 따른 집단대출 증가와 정책대출의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금리가 하향기에 접어들었고, 부동산 시장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아 상반기는 계속적으로 대출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7월 스트레스 DSR 3단계로 규제 강화를 앞두고 이전까지 상반기 주담대 수요는 줄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국은 우려가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1, 2월은 새학기 전 전세를 연장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는 등 이사 수요가 많아 본래 주담대 증가율이 어느정도 있다는 설명이다.
토허제 해제 영향도 아직 단정 짓기 이르다고 말했다. 최근 토허제가 해제된 ‘잠삼대청’(잠실·삼성·대치·청담) 호가가 들썩인 건 맞지만 집주인들이 매물을 거둬들이는 등 결국 실제 부동산 거래로 연결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잔금일에 맞춰 대출을 신청할 텐데 통상 한 두달 시차가 발생하기 때문에, 지금 계약을 하더라도 결국 잔금을 치루는 시점인 3, 4월 신규 주담대 취급액에 반영될 것”이라며 “토허제 해제로 인해 2월 가계대출이 심상치 않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시 역시 토허제 해제 이후 강남권을 중심으로 아파트 가격이 급등했다는 우려에 대해, 9일 설명자료를 내 실거래 자료를 살펴보면 오름세가 미미하고 상승과 하락 거래가 혼재돼있다며 반박에 나섰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자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신규 주담대 증가액은 그렇게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며 영끌이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에는 “일단 상황은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