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타 공인 세계 바둑 최강 자리에 오른 신진서 9단이 영화 ‘승부’ 개봉 시기에 발맞춰 전대 일인자 이창호 9단에 대한 분석을 내놓았다. 신 9단은 “인공지능 이전 바둑 중에 거의 유일하게 지금 가져와도 이상하지 않은 바둑”이라고 극찬했다.
지난 1일 제1회 난양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면서 ‘메이저 8관’에 오른 신진서 9단은 지난 19일 영화 ‘승부’ 시사회 현장을 찾았다. 이날 신 9단은 쿠키뉴스와 인터뷰에서 “조 국수님(조훈현 9단) 역으로 이병헌이라는 최고의 배우가 나왔기 때문에 당연히 흥행할 것 같다”면서 “특히 이병헌 배우가 연기한 조 국수님의 대국 장면 싱크로율이 높아 신기했다”는 소감을 전했다.
세계 바둑 최강자의 계보는 ‘최초의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바둑 황제’ 칭호를 얻은 조훈현 9단부터 시작된다. 황제의 자리는 조 9단의 ‘내제자’ 이창호 9단에게 이어졌다. 스승을 뛰어넘는 청출어람으로 보은한 이 9단은 메이저 세계대회 17회 우승(이 분야 3위 기록을 보유한 조훈현 9단은 9회)이라는 독보적인 성적으로 약 15년 동안 세계 바둑계를 지배하며 군림했다.
뒤를 이어 ‘알파고를 이긴 유일한 인간’ 이세돌 9단이 메이저 14회 우승으로 황위를 이었다. 이후 패권은 중국 바둑 레전드 커제 9단에게 잠시 넘어갔고, ‘조-이-이’ 이후 다시 세계 일인자 계보를 잇는 한국인이 바로 신진서 9단이다. 신 9단은 메이저 세계대회 8회 우승(준우승 5회)을 비롯해 전무후무한 ‘농심배 18연승’을 질주하며 5년 연속 한국에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현재 만 25세로 전성기를 맞은 신 9단이 향후 우승 횟수를 추가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3위 조훈현 9단의 메이저 9회 우승을 넘어 이세돌 9단의 14회도 넘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선대 바둑 황제들의 놀라운 업적, 당시 국민적인 인기 종목이었던 바둑의 위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조훈현-이창호-이세돌로 이어지는 최강자들의 활약은 물론 대단했다. 하지만 인공지능 등장 이후 바둑의 패러다임은 완전히 바뀌었고, 과거 ‘교과서’로 추앙 받았던 이들의 ‘기보(棋譜)’는 구시대 유물로 평가 받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창호 9단은 다르다는 것이 현역 최강자 신진서 9단의 평가다. 신 9단은 “이창호 9단의 바둑을 통해 배우고 싶은 것들이 있어 최전성기 시절 주요 대국들을 AI로 분석해봤다”면서 “솔직히 놀라웠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두셨던 것 같다. 그 시절이 1위와 2위의 실력 차이가 가장 많이 났던 시기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바둑 팬들이 오랜 시간 궁금해 하고 있는 ‘우문’에 대해선 ‘현답’을 내놓았다. 현재의 신진서와 전성기 시절 이창호의 대결에 대해 묻는 질문에 신 9단은 “솔직히 자신은 있다”면서도 “전성기 시절 이창호 사범님이 AI를 공부했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치열한 승부가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도 신 9단은 “웬만해서는 쉽게 물러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서 또 다른 최강자 이세돌 9단을 언급했다.
신 9단은 “이창호 사범님은 AI를 접했더라도 기풍이 변하지 않을 것 같다”면서 “이창호 9단이 바둑 역사상 가장 침착한 스타일”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이세돌 9단에 대해 신 9단은 “AI와 친화적이었다면 어떠셨을지 궁금하다”면서 “어떤 면에서 AI와 가장 유사한 기풍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신 9단은 “바둑 수법 자체는 이창호 9단이 AI와 가장 닮아 있다면, 승부에 대한 날카로움, ‘결정력’이라고 표현하면 좋을 부분에선 이세돌 9단이 최고”라고 부연했다.
신 9단은 “제가 좋아하는 이창호 사범님이 나오는 만큼, ‘승부’가 ‘1000만 영화’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