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일 뒤바뀌는 관세 관련 발언에 미국 증시가 연일 극심한 변동장세를 시현하고 있다. 이미 시장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를 통한 상대국가 ‘흔들기’ 정책이 미국 자산에 대한 신뢰를 저하하는 악순환을 유발한다고 평가한다. 증권가에서도 과거 트럼프 1기의 관세 유예 후 재부과 정책이 확인됐던 만큼, 관세 유예는 리스크 해소가 아닌 불확실성의 확장으로 본다.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뉴욕 증시는 이달 들어 급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이달 1일(이하 현지시간) 4만1989.96에서 10일 3만9593.66으로 5.70% 하락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도 5633.07에서 5268.05로 6.47% 빠졌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1만7449.89에서 1만6387.31로 6.08% 내렸다.
문제는 뉴욕 증시가 극심한 변동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점이다. 글로벌 주식 시장에서 가장 규모가 큰 뉴욕 증시의 변동성은 기타 주요국 증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통상 뉴욕증시의 불안정한 흐름은 주요국 증시를 이끄는 대형주들의 투자 심리에 불확실성으로 작용한다.
3대 지수 가운데 가장 변동성이 높았던 나스닥지수는 지난 3일과 4일 각각 전 거래일 대비 5.97%, 5.82% 급락했다. 단 2거래일 만에 지수가 10%가 넘게 빠진 것이다. 나스닥지수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거대 기술기업 ‘매그니피센트7’ 종목은 더욱 큰 낙폭을 보였다. 일례로 애플 가격은 해당 기간 223.89달러에서 188.38달러로 15.86% 폭락했다.
나스닥지수는 9일 12.16% 급등한 1만7124.97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바로 다음 거래일인 10일 4.31% 급락한 1만6387.31로 주저앉았다. 하루 만에 20% 가까운 급등·급락을 반복하면서 롤러코스터 장세를 시현한 것이다. 이에 월가의 공포지수로 알려진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지수(VIX)도 10일 21.12% 급등한 40.72를 기록했다. VIX는 증시가 불안할수록 수치가 상승한다.
이같은 변동성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일 바뀌는 상호관세 정책에 기인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세계 모든 나라에 10%의 보편관세를 부과하고, 국가별로 △중국 34% △유럽연합(EU) 20% △베트남 46% △대만 32% △일본 24% △인도 26% △한국 25% 등 차등화된 상호관세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이는 시장에서 예상치를 크게 웃돌아 ‘최악의 시나리오’로 평가됐다.
이후 중국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폭탄에 대미 보복관세로 맞불을 펼쳤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각국에 상호관세 부과 발효 이후 하루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중국을 제외한 70여개 상대국에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하고, 10% 보편관세만 적용한다고 밝혔다. 다만 중국에는 총 145%의 관세 폭탄으로 받아쳤다.
이에 뉴욕증시는 관세 유예 기대감에 폭등한 뒤 미·중 무역갈등 고조로 다시 급락하는 흐름을 나타낸 것이다. 뉴욕 증시에 상장된 주요 기업들이 중국에서 대부분의 부품·상품을 조달하면서 관세 폭탄에 따라 미국 내 판매가격 급등 등 실적에 영향을 미칠 중대 변수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이미 세계무역기구(WTO)는 미·중 무역 갈등으로 글로벌 경제가 두 개의 블록으로 갈라지면서 양국 간 상품 교역이 최대 80%까지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미국과 전 세계 실질국내총생산(GDP) 전망치를 감소시키는 요인이다.
조연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변덕스러운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으로 미국 자산시장에 대한 신뢰마저 하락하면서 셀아메리카(Sell America, 미국 매도)를 자극했다. 이에 미국 주식, 채권, 달러 모두 하락했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관세 행보, 1기 때와 닮은 꼴…“관세 유예, 불확실성은 여전”
증권가에서는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행보가 지난 1기 재임 시절과 동일한 양상이라고 분석한다. 트럼프 1기 시절인 지난 2018년 1월22일에도 관세전쟁이 시작된 바 있다. 당시 강경파로 분류된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로스 상무장관이 관세전쟁을 주도했다. 하지만 같은해 12월 미·중간 관세 90일 유예를 합의했다. 아울러 강경파에서 온건파인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이 협상을 주도했다.
이번 관세 정책에서도 90일 유예와 주도권이 강경파인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에서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으로 넘어간 점은 1기 때와 같은 모습이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트럼프의 중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 상호관세 부과 90일 유예는 1기 때와 똑같다. 하지만 트럼프는 2019년 5월 합의를 번복하고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 추가 관세를 재게했다”면서 “당시와 같다면 트럼프는 당분간 조용할 것이다. 다만 90일을 채우기 전에 ‘미국을 존경하지 않는다’며 관세를 다시 꺼내 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광혁 LS증권 연구원은 “이미 시장에서 비판하던 관세(보편)가 부과됐고, 미·중 갈등이 격화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우리가 트럼프에게 우려하던 상황이 도래했다는 판단”이라며 “관세 유예로 인한 환호로 받아들이기에는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다. 보편관세 10% 부과에 대한 각국 보복관세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려워 아직 불확실성의 완전한 유예로 판단하기도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실제로 각국 경제성장률 전망은 여전히 하향 조정되는 모습이다”라며 “더욱이 90일간의 협상이 뉴스를 통해 노출되고, 관세부과에 대한 완전한 후퇴가 나타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변동성 확대 및 2분기 우려가 3분기로 유예되는 흐름”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