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1%대로 내려앉을 조짐을 보이자, 투자처를 모색하던 예테크(예금+재테크)족이 자금 이동을 본격화하고 있다. 안전자산 선호·고수익 추구 심리가 맞물리며 ‘머니무브’가 뚜렷해지는 모습이다.
16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12개월 만기 주요 정기예금 기본금리는 전날 기준 연 2.15~2.75%로 집계됐다. 전월 취급 평균 금리(2.98~3.00%)보다 상·하단이 각각 0.8%p, 0.3%p 떨어졌다.
우리은행은 전날부터 예·적금 18종의 기본금리를 0.10~0.25%p 인하했다. 1년 이상 2년 미만 ‘정기예금’ 금리는 연 2.40%에서 2.15%로 0.25%p 내렸다. ‘우리 SUPER 정기예금’ 금리도 2.60%에서 2.35%로 0.25%p 인하한다. 신한은행의 ‘쏠편한 정기예금’ 금리는 12개월 기준 2.15%, 6개월 기준 2.05%다. 하나은행의 ‘하나의 정기예금’과 KB국민은행의 ‘KB Star 정기예금’ 기본금리도 각각 2.40%로, 현재 기준금리(연 2.75%)를 밑돌고 있다.
고금리 혜택을 내세워 고객을 끌어오던 인터넷전문은행들도 2%대 금리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토스뱅크는 주력 정기예금 상품인 ‘먼저 이자 받는 정기예금’ 금리를 2.5%로 내렸다. 케이뱅크도 지난 8일 기준으로 ‘코드K정기예금’, ‘코드K자유적금’, ‘플러스박스’, ‘주거래우대 자유적금’ 금리를 0.1%p 인하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로 시장금리가 떨어진 영향이다. 한국은행이 올해 한두 차례 더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은행 예금금리는 당분간 하향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오는 17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기준금리가 동결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5월에는 추가 인하가 단행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예금금리 하락은 은행 자금 흐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5대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922조4497억원으로, 한 달 새 15조5507억원 줄었다. 반면 수시입출금식 저축성예금(MMDA)을 포함한 요구불예금은 650조1241억원으로, 전월 말(625조1471억원) 대비 24조9770억원 불어났다. 요구불예금은 언제든 입출금이 가능한 예금으로, 통상 금리가 1% 미만이다. 그간 정기예금에 예치돼 있던 자금이 다른 투자처로 이동하기 위해 요구불예금에 머물러 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은행을 빠져나간 돈은 증시로 몰려들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한 주간(4~10일)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순매수액은 18억6000만달러(약 2조7000억원)로 집계됐다. 지난 주의 두 배, 2주 전과 비교하면 약 5배 가까이 급증했다. 저가매수 기회로 본 투자자들이 대거 몰린 것이다. 특히 고위험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를 대거 사들였다.
안전자산인 금에 대한 수요도 빠르게 늘고 있다. KB국민·신한·우리은행의 골드뱅킹(금 통장)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1조83억원으로, 사상 처음 1조원을 돌파했다. 2월 말(9156억원) 대비 약 1000억원 증가했다. 수요 폭증에 따라 한동안 중단됐던 골드바 판매도 재개됐다.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이달 1일부터 한국금거래소의 1㎏짜리 골드바 판매를 재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 전쟁’ 등 글로벌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금과 같은 안전자산에 자금이 몰리는 분위기다.
다만 자금 이동이 격화할 경우 실물경제와 금융시장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급격한 자금 이동은 금융기관의 유동성 관리에 리스크를 줄 수 있으며, 자금이 적합한 투자처를 찾지 못할 경우 투기적 성향을 띠게 될 가능성도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갈 곳 잃은 자금이 고수익 투자처로 몰리는 현상이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라면서도 “상품 특성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유동자금이 몰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개인 투자자에게 더 큰 손실 위험을 안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