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엑소좀 치료제가 차세대 약물 전달 기술로 주목받는 가운데, 상용화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국내 기업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아직 출시된 제품이 없는 만큼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포석이 깔려있다.
엑소좀은 세포 간 신호 전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작은 소포체(vesicle)로, 기존 방법으로는 전달이 어려웠던 단백질이나 유전물질(mRNA) 등 다양한 생체 활성물질을 원하는 조직이나 세포 안으로 정확히 운반할 수 있다. 면역 반응을 거의 유발하지 않고 생체 적합성도 높아 여러 적응증에 접목할 수 있다. 현재 유전자 치료제, 단백질 치료제, 항암제 등의 약물 전달체나 진단 기술로 주로 활용하고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엑소좀을 기반에 둔 치료제 연구·개발이 활발하다. 한국연구재단의 ‘연구개발(R&D) 리포트’를 보면, 2021~2023년 사이 세계 각지에서 매년 8000편 이상의 엑소좀 관련 논문이 발표되고 있다. 국내의 경우 정부의 기초연구사업에 등록된 엑소좀 연구는 2019년 194건에서 2022년 344건으로 급증했다.
특히 한국은 엑소좀 연구 및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엑소좀 시장 규모는 약 450만 달러(한화 약 60억원)로 추정되며, 2030년까지 연평균 26.8%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측된다. 대표적으로 브렉소젠, 엑스엔이바이오, 일리아스바이오로직스 등이 엑소좀을 활용한 치료제 임상시험에 진입한 상태다.
가시적인 연구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브렉소젠은 지난 2월 의약품 위탁생산개발(CDMO) 기업 한국비엠아이와 320억원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국내 엑소좀 산업계에서 이뤄진 가장 큰 규모의 기술이전이다. 브렉소젠은 이번 계약으로 확보한 자금을 이용해 미국에서 진행 중인 아토피 치료제의 임상 1상을 연내 마무리할 계획이다.
엑스엔이바이오는 올해 초 급성 뇌경색 치료제(SNE-101)의 임상 1상에 들어갔다. SNE-101은 탯줄 유래 줄기세포에서 얻은 엑소좀 기반 치료제로, 세포의 미세환경을 정밀하게 제어해 신경 재생을 촉진하는 물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아울러 모야모야병,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등 다양한 중추신경계(CNS) 질환 치료제의 기초연구 및 비임상을 추진 중이다.
이어 일리아스바이오로직스는 심장 수술 후 급성 신손상 치료제에 대한 1상 임상시험을 지난해 호주에서 완료했으며, 이를 토대로 기술이전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엑소코바이오는 미국에서 줄기세포 엑소좀 신약 후보물질 ‘EXO101’의 동물 안전성 시험을 시작했고, 동아ST는 지난해 1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으로부터 특허를 확보한 밀크엑소좀을 활용해 제조 공정 및 약효 기전 연구 등을 진행 중이다.
엑소좀 치료제는 아직 상용화된 제품이 없는 신시장이다. 국내에서는 2022년 14곳의 기업이 참여한 엑소좀산업협의회가 출범하며 본격적인 산업화 논의가 시작됐고,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12월 ‘세포외소포 치료제의 품질, 비임상 및 임상평가 가이드라인’ 개정안을 발표하며 제도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업계는 국내 기업들이 연구개발과 글로벌 임상에 속속 진입하는 상황에서 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엑소좀산업협의회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이 우수한 연구 인프라와 제조 역량을 기반으로 해외 파트너십을 확대하고 있으며 글로벌 경쟁력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면서 “산업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려면 명확한 규제와 제도 정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협의회는 엑소좀 산업 발전을 위한 과제로 △표준화된 생산·품질 관리 시스템 구축 △임상 및 상용화를 위한 규제 지원 △산학연 협력 생태계 조성 △전문 인력 양성 및 교육 인프라 확충 △정부 투자 확대 등을 제시했다.
협의회는 “현재 엑소좀 기반 치료제에 대한 임상평가 민원인 안내서는 마련돼 있지만, 실제 임상시험과 허가 절차를 위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며 “엑소좀의 생산, 정제, 저장 등 전 주기에 걸친 국제적 품질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기초 연구부터 상업화까지 연계된 오픈 이노베이션 생태계를 조성하고 R&D 지원, 인허가 패스트트랙, 글로벌 진출 지원 등 정책적 뒷받침이 더해진다면 엑소좀 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