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6월 3일 조기 대선을 앞두고 경선 레이스가 본격화되면서 유력 주자들의 공약에 따라 정치·정책 테마주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하지만 테마주의 ‘단맛’은 유독 관련 기업 임원들만 본 모양새다. 주가가 급등하는 동안 경영진은 잇따라 지분을 매각해 수십억 원의 차익을 실현한 반면, 개인 투자자들은 급락장에서 손실을 떠안는 구조가 되풀이되고 있다.
2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대선 경선 후보인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테마주로 묶인 DSC인베스트먼트는 지난 22일 임원 등 8명이 회사 주식을 팔았다고 공시했다. 이날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9.82% 하락해 장을 마감했다. 다음날인 23일에는 11.39%나 빠지며 부진한 흐름을 보였다.
주가 하락은 회사 내부자들이 주식을 대량 매도한 것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통상 최대 주주나 임원의 지분 매각은 회사 주가가 고점이라는 신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김요한 본부장은 지난 15~16일 이틀에 걸쳐 25만주를 팔아 22억원을 챙겼다. 이한별 본부장(21억원), 신동원 상무(23억원), 이경호 상무(24억원), 최주락 사외이사(2억6000만원), 이성훈 상무(6738만원) 등도 회사 주식을 매도했다. 윤건수 대표의 배우자 이현옥 씨도 20만주를 매도해 18억원을 확보했다.
앞서 이 후보는 대선 출마 선언 이후 첫 공식 일정으로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퓨리오사AI’를 방문했다. 직후 ‘퓨리오사AI’에 DSC인베스트먼트가 투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가가 급등했다. DSC인베스트먼트 주가는 지난 14일 전 거래일 대비 18.76% 상승했다. 한달 전만해도 4000원대였던 주가는 17일 9300원까지 치솟았다.
이재명 테마주로 분류된 코나아이 역시 최대주주가 수십억원 규모의 보유 주식을 장내 매도한 이후 주가가 출렁였다. 지난 14일 코나아이 조정일 대표는 결제일 기준 지난 7일부터 11일까지 총 11만5600주를 장내 매도했다고 공시했다. 주당 평균 3만9309원에 팔았다. 전체 발행 주식의 0.79% 수준으로 매도 금액은 약 45억원 규모다. 조 대표의 직전 거래는 지난해 7월로, 당시 조 대표는 413주를 주당 1만4736원에 매수했다. 주식 가격만 비교하면 직전 매수 때보다 평균 매도금액이 167%가량 올랐다.
코나아이는 지역화폐 플랫폼 개발업체로,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였던 2019년 경기지역화폐 사업 운영 업체로 선정된 기업이다. 이 후보가 그간 지역화폐 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해 왔다는 점에서 이재명 테마주로 분류된다.
조 대표의 이번 매도는 ‘내부자거래 사전공시제도’를 비켜갔다. 이 제도는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것으로, 상장사의 지분 10% 이상을 보유한 주요 주주나 임원이 전체 발행 주식의 1% 또는 50억 원 이상 규모의 주식을 처분할 경우, 최소 30일 전에 매도 계획을 공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조 대표는 해당 기준에 미치지 않는 약 40억원 규모의 주식만을 매도해, 사전 공시 의무를 회피한 셈이다.
조 대표의 주식 처분 사실이 14일 공시되면서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1.38% 빠졌고, 다음날인 15일에는 전날보다 28% 떨어진 3만750원에 거래를 마쳤다. 조 대표뿐만 아니라 코나아이 임원도 주식을 팔았다. 신동우 감사는 지난달 27일 보유 중이던 코나아이 주식 2000주를 1주당 3만1001원에 매도했다.
이재명 테마주로 분류된 오리엔트정공의 장재진 대표도 주가 급등기에 차익을 실현했다. 지난해 12월 초까지만 해도 주가가 1000원 안팎이던 오리엔트정공은 연말부터 급등세를 보였고, 장 대표는 올해 2~3월 사이 주당 약 6000원에 주식을 매각해 총 57억5748만원의 매도차익을 거뒀다. 그는 보유 중인 잔여 지분도 5월 중 장내에서 처분할 계획이다. 오리엔트정공은 이 후보가 과거 계열사인 ‘오리엔트시계’에 근무한 이력이 있어 정치 테마주로 분류된다.
테마주 열풍에 올라탄 포바이포, 에이텍, 동신건설 등도 회사 주요 임원이 고점에서 주식을 팔았다.
정치·정책 테마주의 과열 양상으로 변동성이 확대됨에 따라 투자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현재까지 ‘투자경고’ 이상 시장경보 조치가 내려진 종목은 총 115개로, 이 중 52%인 60개 종목이 정치 테마주에 해당했다. 특히 2025년 4월 한 달 동안만 투자경고 이상 조치를 받은 37개 종목 중 78%에 달하는 29개 종목이 정치 테마주였다.
정치 테마주의 주가 변동률도 심상치 않다. 거래소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이후 정치 테마주 평균 주가 상승률은 121.81%에 달했다. 이는 같은 기간 코스피(16.47%)와 코스닥(24.12%) 상승률을 6배 이상 웃도는 수준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확인되지 않은 풍문이나 막연한 기대감만으로 주가와 거래량이 급등하는 종목에 대해서는 추종 매수를 자제해야 한다”며, “기업의 실적, 재무상태, 시장 환경 등 펀더멘털에 기반한 합리적인 투자 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