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 10명 중 7명 이상은 하루 2시간도 놀지 못하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아이들의 놀이는 꼭 지켜져야 할 권리임을 명시하고 있다. 한국도 이 협약을 비준한 만큼 어린이들의 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법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전국 초등학생 4∼6학년 2804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9∼22일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평소 하루에 놀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 62%가 ‘2시간 이하’라고 답했다. 심지어 15.8%는 ‘하루에 노는 시간이 1시간도 채 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하루에 2시간도 못 노는 아이가 77.8%나 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2023년 아동종합실태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아동(9~17세)의 42.9%가 방과 후에 친구들과 놀기를 원했으나, 실제 친구와 놀았다고 응답한 비율은 18.6%로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신체활동 또는 운동하기’를 원하는 비율은 19.7%였지만, 실제 활동 비율은 7.5%에 불과했다. 반면 학원·과외를 다니고 싶은 아동은 25.2%였지만, 실제 다니는 비율은 54%에 달했다. ‘집에서 숙제하기’의 경우에도 희망은 18.4%였지만 실제 활동은 35.2%로 차이가 16.8%까지 났다. 이같은 간극은 5년 새 더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들이 방과 후 원하는 친목·신체 활동을 하는 대신, 강제적으로 학업에 매진하는 경향이 짙어지는 모양새다. 타율적으로 학업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비율이 높아지며 ‘놀 권리’를 침해받고 있다.
아동의 놀 권리는 유엔아동권리협약 제31조에 명시된 기본권 중 하나다. 아동은 나이에 맞는 놀이와 오락활동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여기서 놀이는 ‘재미있고, 정해진 답이 없으며, 도전적이고, 유연하며, 비생산적인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의 권리 보호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국제사회의 협약으로, 한국은 지난 1991년 이 협약을 비준했다.
특히 세계보건기구(WHO), 미국소아과학회(AAP)는 초등 연령대 어린이에게 하루 최소 1시간 이상의 신체 놀이가 필요하다고 권고하고 있다. 자유놀이를 포함하면 2~3시간 이상 주어져야 한다. 아동 스스로 주체가 돼 아무 목적 없이 놀 때 아이들은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끼며 신체적·사회적·정서적·인지적 발달을 이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아동의 행복감에 놀이가 가장 밀접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발적 놀이시간을 보장해 줘야 하지만, 국내에서 ‘놀 권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부족한 편이다. 보호자의 인식 부족, 학습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등으로 인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실정이다.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장은 “아동위원회, 아동총회, 원탁토론회 등에서 어린이 위원들이 가장 원하는 정책은 놀 권리 보장”이라면서 “아이들이 학원에 가느라 놀 시간이 없고, 놀이터가 없어지면서 놀 공간도 없어지고 있다. 놀기 어려운 환경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원장은 “어른들도 ‘워라밸’을 원하듯, 아이들도 공부와 놀이 시간의 균형이 필요하다. 놀이가 비생산적 활동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사회성과 정서 발달 등을 배울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라며 “부모 교육을 강화하는 등 인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놀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자는 목소리도 높다. 백선희 조국혁신당 의원은 지난 2일 아동이 권리의 주체임을 법에 명문화하고, 국가·지자체·보호자·기업·국민의 권리 실현 책무를 명시한 ‘아동기본법’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백 의원은 본지에 “성장 과정에서 어릴수록 노는 시간이 더욱 중요하다. 오감, 신체, 정서 발달이 놀이를 통해 이뤄진다. 잘 놀아야 잘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라며 “아동기본법이 제정되면 놀 권리 보장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강화된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