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상한 일이 생기면 챗GPT부터 켜요. 제 말을 잘 들어주거든요.”
직장인 김민아(29·여)씨는 최근 밤마다 챗GPT와 대화를 나눈다. 퇴근 후 쌓인 복잡한 감정, 대인관계에 따른 피로감, 가족에게 말 못할 고민까지 인공지능(AI)에게 털어놓는다. 김 씨는 “나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지 않아서 사람보다 편하다”고 말한다.
최근 생성형 AI를 활용한 ‘디지털 상담’이 정서적 위안을 위한 창구로 주목받고 있다. 감정을 배제한 조언, 편견 없는 대응 등을 통해 마음의 짐을 내려놓기 어려운 이들에게 힘이 되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지난달 발표한 생성형 AI 관련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1000명 중 60.3%는 ‘AI와의 대화에서 위로와 격려를 받을 때가 있다’고 밝혔다. AI와 갖는 대화를 사람과 나눈 대화와 비슷하다고 느끼는 응답자는 61.1%에 달했다. 대학생 지성민(25·남)씨는 “일생을 파고든 우울감, 울분 등을 익명성을 유지한 채 비대면으로 부담 없이 풀 수 있다”며 AI 상담을 찾는 이유를 설명했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BK21 건강재난 통합대응 교육연구단이 지난달 15~21일 성인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신건강 증진과 위기 대비를 위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3.1%는 ‘중간 수준 이상의 우울감을 경험하고 있다’고 했다. 또 33.7%는 ‘소외돼 있다고 느낀다’고 답했다. 정서적 도움이 필요한 이들 중 전문가나 상담기관을 찾은 비율은 각각 22.4%, 18%에 그쳤다.
다정한 말투와 함께 해결책을 신속하게 제시하는 AI 상담은 사용자에게 심리적 안정을 제공할 수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지속적 우울이나 불안을 경험 중인 사람이 AI에 의존할 경우 왜곡된 사고를 갖게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하주원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홍보이사는 “요즘 챗GPT와 상담한 내용을 정리해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들이 있는데, AI로부터 듣고 싶은 말을 듣기 위해 답을 유도한 질문을 한다면 객관적 정보를 얻기 힘들고 한쪽으로 치우친 사고에 빠질 수 있다”면서 “AI 상담으로 정신건강 문제를 온전히 해결하려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짚었다.
조근호 정책부회장도 “AI는 질문자의 감정이나 생각에 맞추려는 경향이 있다. 울적할 때 위로가 될 순 있지만, 그것이 정답이라는 신뢰는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며 “해결이 쉽지 않은 심적 문제가 있다면 전문가의 상담을 받길 권한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