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소년 자살률이 해마다 치솟고 있다. 성적과 진로에 대한 압박 속에서 우울과 불안을 호소하는 학생이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이를 구조적으로 완화할 교육 시스템은 여전히 제자리다. 전문가는 청소년 자살이 더 이상 개인의 위기나 일탈이 아니라, 사회와 교육제도의 구조적 결함을 드러내는 신호라고 말한다.
지난 21일 부산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 세 명이 쓰러진 채 발견됐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같은 학교에 다니던 친구 사이인 이들은 사건 직전 아파트 옥상에 유서와 가방을 남겼고, 유서에는 “학업 스트레스와 진로 부담이 너무 크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세 사람 모두 학교폭력이나 따돌림을 겪은 정황은 없었다. 경찰은 “슬퍼하지 말고 미안하다는 내용으로 볼 때, 우발적인 선택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비극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10대들이 집단으로 생을 마감할 만큼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음에도, 그 누구도 징후를 감지하거나 구조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더욱 이 사건은 예외가 아니라 통계로도 확인되는 사회적 현상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실이 지난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극단적인 선택으로 숨진 초중고생은 214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고등학생이 106명으로 가장 많았고, 중학생은 93명, 초등학생도 15명이 포함됐다. 2016년 108명에서 불과 7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학생 10만명당 자살자 수를 뜻하는 ‘학생 자살률’도 2015년 1.53명에서 4.11명으로 급증했다.
청소년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는 여전히 학업 스트레스가 지목된다. 교육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2022년 전국 초중고 학생 5176명과 학부모 185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이런 경향은 뚜렷하게 드러났다. ‘학업이나 성적 때문에 불안하거나 우울했던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전체 학생의 47.3%가 ‘그렇다’고 답했다. 성적 문제로 자해 또는 자살을 고민한 적이 있다는 응답도 25.9%에 달했다. 단순히 ‘힘든 시기’를 겪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죽음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수준으로 스트레스를 감내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정부와 교육 당국의 대응은 여전히 사건 이후의 ‘수습’에 머물러 있다. 긴급 상담, 대책반 구성, 추모 공간 설치 등은 일시적 위로에 그친다. 해마다 비슷한 비극이 반복되지만, 학교의 학업 부담 구조나 청소년 정신건강 지원 시스템이 획기적으로 바뀌었다고 보기 어렵다. 부산교육청은 해당 사건 직후 위기관리위원회를 열고 남은 학생들에 대한 심리 상담을 진행 중이다.
현재 시행 중인 ‘자살예방법’은 자살 고위험군 발굴과 지원, 관련 교육 등을 규정하고 있지만, 청소년 현장에선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교육부도 매년 ‘자살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연 1회 의무교육이나 학교장 재량 방식에 머물러 있다. 입시 시기에는 상담 자체가 사실상 중단되는 구조다. 청소년 자살이 반복될 때마다 대응책을 발표하지만, 정작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교육 시스템은 아직 미비하다.
전문가는 청소년 자살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책임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소년 자살은 단순히 개인의 심리적 위기나 정신병적인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며 “지금의 청소년들은 코로나19 이후에도 계속된 경제 위기, 사회적 재난, 정치적 불안 같은 전반적인 사회 불안정성 속에서 자라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히려 보호받아야 할 이들이 그 위기를 가장 취약하게 흡수하고 있는 것”이라며 “자살률 증가를 사회 구조의 위기로 봐야 하는 이유”라고 짚었다.
상담과 교육 시스템의 공백 문제도 지적했다. 임 교수는 “정규 수업 안에 인성교육이나 자살 예방 교육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하더라도 일방적인 강연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며 “외부 전문가와 연계한 소규모 상담 프로그램을 제도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