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동원령 떨어진 ‘배드뱅크’…대부업계 ‘난색’

금융권 동원령 떨어진 ‘배드뱅크’…대부업계 ‘난색’

기사승인 2025-06-24 06:00:07
쿠키뉴스 자료사진. 

정부가 장기 연체채권 정리를 위한 ‘배드뱅크’ 설립에 나섰지만, 대부업계 협조를 이끌어내는 데 난항이 예상된다. 악화된 업황 속에서 채권 매각 조건·기금 출연을 두고 업계가 난색을 표하면서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산하에 채무조정기구를 출자해 배드뱅크를 구성하고,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의 개인 무담보채권을 일괄 매입할 방침이다. 채권은 금융회사와 협약을 맺은 뒤 1~5% 수준의 가격으로 매입한다. 송병관 금융위원회 서민금융과장은 “캠코가 회계법인을 통해 매입가 테이블을 새로 만들 계획”이라며 “예산 신청 기준으로는 5% 매입가율을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채권 매입 이후에는 즉시 추심이 중단된다. 채무자의 상환 능력은 소득·재산을 관계부처 행정 데이터로 분석해 평가한다. 중위소득 60% 이하(재산)인 개인이 회생·파산 인정 재산 외에 처분 가능 재산이 없는 경우엔 채권 전액 소각, 일부 상환 여력이 있으면 원금 80% 감면 후 10년 이상 장기 분할 상환이 적용된다.

금융위는 이번 사업에 총 8000억원의 재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 가운데 절반인 4000억원은 정부가 추경을 통해 마련하고, 나머지 4000억원은 금융권 출연을 통해 조달할 예정이다. 총 8000억원을 확보한다고 가정할 경우, 16조4000억원의 연체채권을 매입할 수 있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추정 수혜 인원은 113만4000명이다.

금융당국은 금융권 입장에서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장기 연체 채권들은 일종의 계륵 같은 자산으로, 가지고는 있지만 회수는 거의 불가능하고, 회수하려면 관리 비용이 더 많이 든다”며 “이미 7년 이상 지난 채권들은 대부분 상각이 완료돼 회계상 비용 처리도 끝난 상태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채권을 정부가 적절한 가격에 인수해주고, 금융권은 일부 비용만 부담하면 되니 오히려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덧붙였다.

그래픽=윤기만 디자이너

다만 연체채권 상당량을 보유한 대부업계가 이번 정책에 적극 협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업계는 무엇보다 매각 가격을 문제 삼고 있다. 한 대부업계 관계자는 “채권 성격마다 차이가 있지만, 정부가 검토 중인 수준은 업계가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장기 연체 기준을 충족하더라도 채권의 매입 시점에 따라 업체의 손익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예컨대 지난해 높은 가격으로 매입한 채권을 올해 5% 수준에 넘기라고 하면, 손실이 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배드뱅크가 사들일 채권은 대부분 대부업체 보유분인데, 시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넘기고 출연까지 하라는 건 민간에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대부업계는 이미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상태다. 법정 최고금리가 연 20%로 제한된 이후, 고위험 채무자에게서도 이자 수익 확보가 어려워졌다. 예금·적금 등 수신 기능이 없는 대부업체는 자금 조달이 쉽지 않다. 대부분 저축은행이나 캐피탈사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구조로, 조달금리 부담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헐값에 채권을 넘기면 손실을 버티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업황 지표도 나빠졌다. 금융감독원의 ‘2024년 상반기 대부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자산 100억원 이상 대형 대부업체의 연체율은 13.1%로 전년 말 대비 0.5%포인트(p) 상승했다. 대출잔액은 3개월 새 2.4% 줄었다. 이용자 수도 71만4000명으로 1만4000명 감소했다. 금감원은 조달금리 상승과 연체율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했다.

출연 여부 역시 업계의 주요 관심사다. 정부는 아직 출연 업권과 분담 방식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업계는 출연 요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또 다른 대부업계 관계자는 “은행처럼 수익 여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현재는 영업 지속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이라며 “풀칠도 어려운 업권에 기여를 강요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과거 정부와 대부업권 간 협의가 무산된 전례도 있다. 윤석열 정부 시절 도입된 ‘새출발기금’은 코로나19 피해 자영업자의 채무를 조정하기 위한 최대 30조원 규모의 프로그램으로 설계됐지만, 대부업권 채권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정부는 대부업계의 참여를 타진했으나, 업계는 조달금리 부담 등을 이유로 거절했다.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대부금융협회 관계자는 “아직 정부 측과 구체적인 소통이 이뤄진 바는 없다”고 밝혔다. 금융위 관계자 역시 “출연 업권이나 분담 방식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며, 세부 구조는 추경 통과 이후 확정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최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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