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구영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이 정권 교체를 이유로 임기 3개월을 남기고 사퇴하면서 차기 사장 인선을 놓고 또다시 내부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K-방산 수출 확대의 중추기관인 데다, 노동조합 측에서 정치권 연루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 당초 예상보다 진통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9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KAI의 신임 사장 하마평에는 강은호 전 방위사업청장, 류광수 전 KAI 부사장, 문승욱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이 올라 있다. 당초 오는 9월까지 임기였던 강구영 사장이 이달 1일 퇴임하면서 KAI는 차재병 부사장의 임시 대표이사 체제에서 사장 인선 절차에 돌입할 계획이다.
강 전 사장이 자진 사퇴의 형식으로 물러났지만, 업계는 사실상 정권 교체에 따른 조직 정비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공군사관학교 30기 출신인 강 전 사장은 김용현 전 국방장관과 윤석열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예비역 군인 모임 ‘국민과 함께하는 국방포럼’ 공동 운영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윤석열 정권이었던 2022년 KAI 사장으로 임명돼 취임 직후 대대적인 임원 교체를 단행하기도 했다.
강 전 사장이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 임기를 남긴 채 물러난 것 자체로 차기 사장 인선의 정치권 낙하산 우려가 커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하마평에 오른 이들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강은호 전 청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국방선임행정관을 지내고, 방위사업청 내부 직원 중 처음으로 차장과 청장을 역임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국방산업특보로 활동했다.
다만 강 전 청장과 관련해 KAI 노조는 성명문을 통해 “공공기관 수장으로서의 기본 자질조차 갖추지 못한 인물”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노조는 “(그는) 재임 시절 업무추진비 허위 기재, 기자들과의 부적절한 술자리 논란으로 고발된 전력이 있으며, 과거 신뢰를 잃은 퇴직 임원들과 손잡고 복귀를 꾀하고 있다는 정황까지 드러나고 있다”며 “단순한 낙하산을 넘어, 과거 줄세우기 경영 세력의 조직적 귀환 시도”라고 주장했다.
또다른 후보로 꼽히는 류광수 전 부사장에 대해 노조는 “사장으로 선임돼선 안 되는 가장 우려되는 인물”이라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현재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부사장인 그는 KAI 부사장 재직 당시 한국형 전투기 KF-21 개발을 총괄했던 고정익사업부문장 출신으로, 경공격기 FA-50 개발도 추진한 바 있다.
그러나 노조는 KAI를 퇴직하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이직한 그가, KAI 출신 핵심 기술 인력들의 한화 이직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는 “사실상 기술·인력 유출의 통로 역할을 한 그가 다시 사장으로 복귀하는 것은 KAI를 외부 자본에 종속시키는 것이며, 기술 주권을 무너뜨리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조는 류 전 부사장의 복귀 시도를 반드시 저지하겠다고 강조했다.
문승욱 전 장관의 경우 산업부에서 공직을 시작해 방사청 한국형헬기사업단 민군협력부장, 차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노조는 문 전 장관이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노조는 “고정익 항공기 분야에 대한 직접적인 실무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한계는 분명하지만, 관련 공직 경험들이 산업 정책에 대한 이해와 행정 안정성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정권 바뀔 때마다 낙하산 논란…“K-방산 확대 속 전문가 필요”
방위산업 및 국가기간산업이라는 배경 하에 KAI 사장직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체를 반복하며 정치권 낙하산 우려를 지속적으로 낳아 왔다. 역대 8명의 사장 중 내부 출신은 하성용 전 사장이 유일하다.
그러는 사이 민간 방산기업들이 빠르게 치고 올라왔고, K-방산의 ‘역대급’ 반등 속에서도 KAI는 지난해 매출 3조6337억원, 영업이익 2407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각각 4.9%, 2.8%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수출 활로를 전 세계 각국으로 확장하며 4대 방산강국 도약을 목표로 하는 현 시점, 어느 때보다 KAI에 정치적 영향이 아닌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노조가 사장직 하마평 단계서부터 강도 높은 비판을 제기하는 것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다.
김승구 노조 위원장은 “이번 인선은 단순히 자리를 채우는 문제가 아니라 KAI의 정체성과 생존, 대한민국 항공우주산업의 기술 주권이 걸린 중대한 분기점”이라며 “노조는 이번 사장 인선을 둘러싼 움직임이 정치 인맥, 구시대 사조직, 퇴직 낙하산 세력의 연합으로 이어지는 것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이고, 검증 없는 낙하산 인사가 강행될 경우 즉시 총력 투쟁에 돌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방산업계 안팎에선 제3의 인물 발탁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안규백 국방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아직 진행되지 않은 데다, 이재명 정부에서 현직 기업인 등 실무 측면을 강조한 ‘깜짝 발탁’ 또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방부장관 인사청문회가 다음 주 진행된 뒤 최종 임명되면, 그 이후 방사청장 인사, KAI 사장 선임 등 절차가 순차 진행될 것”이라며 “지금 단계에서 꼭 하마평에 오른 후보들 중에서만 지명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기엔 다소 이르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