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간납사 규제, 수년째 구멍…부담은 제조사·환자 몫

의료기기 간납사 규제, 수년째 구멍…부담은 제조사·환자 몫

간납사 36%, 의료기관과 특수관계…리베이트 의혹도
제조사 대금 지연·의료비 부담 가중 우려 지속
21대 국회 입법 무산…“법적 제재 강화 필요”

기사승인 2025-07-20 06:00:05 업데이트 2025-07-21 11:12:31
서울의 한 의료기관 외래 진료실에 의료용 소모품 등 치료재료와 검사물품이 비치돼 있다. 박선혜 기자  

병원과 특수관계에 있는 간접납품업체(간납사)가 의료기기 유통의 투명성을 해치고 있다는 지적이 거듭되고 있다. 간납사가 제조사 선택에 일방적으로 관여하면서 공급사 진입 장벽이 높아지고, 소비자가 부담하는 치료재료 가격도 합리적 기준 없이 책정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는 의약품처럼 의료기기 유통에 대한 법적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입법조사처가 지난해 내놓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 이슈 분석에 따르면, 의료기기 시장은 ‘소량 다품종 다빈도 거래’라는 특성 때문에 병원이 모든 품목을 직접 계약하고 재고를 관리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에 간납사가 병원과 제조·수입업체 사이에서 거래를 중개하는 구조가 형성됐다. 간납사는 미국 구매대행업체(GPO) 모델을 참고해 ‘선진 유통구조’로 도입한 것으로, 의료기기법에 따라 판매업 신고를 통해 설립한다.  

현재 다수의 간납사는 병원 설립자나 재단 임원 가족 등 특수관계인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독점적 납품 권한을 바탕으로 고율 할인, 장기 미결제, 무담보 거래 등을 요구하며 공급사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고 있다.

특수관계인이 세운 ‘페이퍼 컴퍼니’…제조사·환자 피해

2022년 보건복지부의 ‘의료기기 유통질서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간납사 44곳 중 16곳(36%)이 의료기관과 특수관계에 놓여있다. 이 가운데 2촌 이내 친족이 운영하거나 병원이 직접 지분을 보유한 경우가 각각 7곳에 달했다. 업계는 특수관계인이 페이퍼컴퍼니 형태로 간납사를 세워 본연의 유통 기능 없이 중간 이익만 챙기는 구조가 만연하다고 짚었다. 일부는 의료기기 구매 계획부터 정산까지 전 과정에 개입하며 리베이트 창구로 악용한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지난해 의과대학 정원 확대 논란과 의료계 파업 등으로 인해 병원 경영이 어려워지자, 간납사들이 의료기기 대금 결제를 6개월에서 1년 이상 지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입법조사처는 공급업체의 자금 순환이 크게 악화하고 업계 전반이 줄도산 위기에 처했다고 분석했다. 실제 몇몇 업체는 매출이 50~70%가량 감소한 것으로 파악된다.

의약품 유통을 규율하는 약사법과 비교해 의료기기법은 규제가 현저히 느슨하다는 점 역시 문제로 꼽힌다. 약사법은 도매상이 특수관계 의료기관에 약품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명시하며 대금 지연 시 이자 부과, 행정 처분이 가능하다. 반면 의료기기법은 제재 수단이 명확히 마련돼 있지 않다.

이 같은 문제는 반복 납품이 많은 치료재료 분야에서 더욱 심각하다. 치료재료의 경우 간납사와 연계된 제조사만 수백 곳에 이르며, 유통되는 제품 종류도 수천 종에 달해 관리와 투명성 확보가 여의치 않다. 아울러 의료기관에서 의약품 다음으로 건강보험 지출이 많은 영역이며, 제품 단가 상승이나 유통의 비효율성은 환자의 본인부담 증가로 직결될 수 있다.

한 의료기기 제조업체 관계자는 “제조사가 넘긴 가격보다 병원이 실제로 구매한 가격이 더 비싸면 그 차익이 간납사와 병원에 돌아가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병원은 비용을 들이지 않은 채 이익을 얻고 간납사는 유통 과정에 기여 없이 수익을 챙겨 그 부담이 건강보험 재정이나 환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라고 했다. 

‘규제 강화’ 입법 논의 중단…“22대 국회선 전략적 접근 필요”

간납사 규제 강화를 위한 입법은 21대 국회에서도 시도됐지만, 치료재료와 의료기기(장비)의 개념 혼선 등이 이어져 논의가 중단된 바 있다. 또 정부가 2021년 ‘의료기기 대리점 표준계약서’를 통해 거래 조건과 결제 기한, 담보 조건, 거래지위 남용 방지 조항 등을 뒀지만 권고 수준에 그쳐 실제 현장 적용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의료계의 반발도 법안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의료기관 단체들은 계약의 자유 침해, 과도한 정부 개입 등을 이유로 의료기기 유통 구조 개선 법제화에 반대하고 있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는 전략적 접근을 통해 22대 국회에 업계 현실을 정확히 전달하고 정책 혼선을 줄이기 위해 이해관계자들과 소통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의료기기법 개정을 통한 표준계약서 의무화 △대금 지급기한 명문화 △보건복지부 주관 전국 실태조사 시행 등을 제도 개선 방안으로 제시했다. 협회는 “왜곡된 유통구조는 공급사의 경영을 위협할 뿐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 운용의 비효율성과 국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며 “공정한 유통 구조 정립은 국민 보건 향상과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 확보로 연결되는 만큼 정부와 국회가 적극적으로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피력했다. 

입법조사처는 △특수관계 간납사와 의료기관 간 거래 금지 △표준계약서 작성 의무화 △대금 지급기한 설정 및 초과 시 이자 부과 △공정거래위원회의 불공정거래 직권조사 도입 등을 의료기기법에 반영할 것을 제안했다. 입법조사처는 “의료기기 유통은 국민 건강과 직결된 사안으로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며 “공정한 거래 질서를 확립하고 산업 안정화를 도모할 입법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박선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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