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못 믿겠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못 믿겠다”

소수의견은 폐기되고 만장일치 강요
법률 정면 위반하는 백지서명 관행도 버젓

기사승인 2022-06-14 07:00:07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CI. 의료중재원 홈페이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하 의료중재원)이 공정성과 신뢰를 상실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의료중재원은 의료사고 및 분쟁이 발생했을 때 감정과 조정절차를 진행해 분쟁을 해소하고 피해자를 신속히 구제할 목적으로 2012년 보건복지부 산하에 설립, 운영되고 있다. 

의료분쟁은 환자와 의사 사이에 정보의 비대칭이 크다. 의사는 전문적인 지식을 보유하고 있으며, 의료 행위 당시의 상황에 대한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환자의 경우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 환자는 의료중재원의 도움을 통한 구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의료중재원의 심의 과정에 의혹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의료사고 피해자의 자료와 증언을 축소·왜곡해 해석한다는 고발이 시민사회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의료중재원은 의사 2명·변호사 1명·검사 1명·소비자권익위원 1명 등 총 5명이 참여하는 감정부를 구성해 감정서를 작성하는데, 이 중 의사인 위원들이 분쟁 당사자 가운데 병원과 의료인 편을 든다는 것이다. 

13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은 기자회견을 열고 의료중재원의 공정성을 회복할 것을 촉구했다. 경실련이 지적한 문제점은 △의사인 감정위원의 편향성 △만장일치 강요 및 소수의견 고의 누락 △감정부의 백지서명 관행 등이다.

송기민 한양대학교 디지털의료융합학과 교수. 경실련 간담회 갈무리

의료중재원에서 감정부는 회의를 거쳐 합의한 결과를 토대로 감정서를 작성한다. 작성자는 의사인 상근위원(이하 감정부장)이다. 감성서는 조정부에 송부돼, 사건의 경위 파악과 조정의 근거자료가 된다. 조정이 성립되면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감정서는 피해 구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송기민 한양대학교 디지털의료융합학과 교수는 “감정부장이 의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회의를 전개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비판했다. 송 교수는 의료중재원이 설립된 2012년부터 비상근 감정위원으로 감정에 참여해 왔다. 

송 교수에 따르면 비상근 위원들은 감정회의에 앞서 감정의뢰서, 사건과 관련된 자료 등을 이메일로 받는다. 이를 검토한 후 의료중재원에 감정소견서를 미리 제출하고 회의에 참석한다. 이 감정소견서를 감정부장은 미리 받아 읽고, 다른 위원들의 견해를 파악한 상태로 회의에 참석한다.

송 교수는 “감정부장은 분쟁 당사자인 의사에게 유리한 논거, 환자에게 불리한 논거 등을 미리 파악하고 회의에 들어와, 자신과 같은 의사들에게 유리한 무과실 전체합의 결론이 도출되도록 회의를 진행한다”며 “의사로서 전문성을 강조하며 다른 위원들이 제시하는 반대 의견을 억누르고 사소화하는 분위기가 일반적이다”라고 토로했다. 

소수의견은 폐기되고, 만장일치가 강요된다는 점도 문제다. 현행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하 의료분쟁조정법)은 ‘감정결과를 의결함에 있어 감정위원의 감정소견이 일치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감정서에 감정위원의 소수의견도 함께 기재하여야 한다’고 명시한다.

정혜승 변호사. 경실련 간담회 갈무리

의료중재원의 비상근 감정위원으로 참여해 왔던 정혜승 변호사는 “감정부장의 의견과 다른 반대 의견을 낸 비상근 위원들이 소수 의견을 감정서에 기재할 것을 강력히 요청하고 회의장을 나왔지만, 소수 의견이 실제로 감정서에 들어갔는지 전혀 확인하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며 “이런 이유로 실제 재판에서도 환자와 병원 측 변호사들이 재판부에 의료중재원 측 감정은 신뢰하기 어렵다며 의료중재원으로 감정을 보내지 말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의료중재원은 비용 부담 없이 환자가 자신의 의료기록을 분석받고, 의료진과 오해와 갈등을 풀 수 있는 순기능이 크기때문에 법조인으로서 환자들에게 권하고 있다”면서도 “의료중재원 감정을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법률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백지서명 관행도 고발됐다. 의료분쟁조정법은 ‘감정서에는 사실조사의 내용 및 결과, 과실 및 인과관계 유무, 후유장애의 정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을 기재하고 감정부의 장 및 감정위원이 이에 기명날인 또는 서명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감정부장이 백지에 감정위원들의 서명을 받고, 이후 단독으로 감정서를 작성해 마지막장에 미리 받아놓은 서명을 첨부한다는 것이다.

정 변호사는 “(비상근 위원으로 활동한) 동료 변호사들은 모두 백지에 서명을 하고 나왔지만, 실제로 감정부장이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감정서에 충실히 담았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고 토로한다”며 “법률 전문가로서 참여했지만, 거수기 역할만 한 것 같다는 아쉬움이 컸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 역시 “감정부장 외 다른 위원들은 감정서에 결론적으로 어떤 내용이 들어가는지 모른다”며 “의료분쟁을 해결하려면 의료 전문가의 도움이 필수지만, 전문가 집단이 서로의 안전만을 도모하고 있어 진실을 규명하는 데 충실해야 할 의료중재원이 본연 역할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실련과 건강세상네트워크 등 의료중재원에 비상근 위원을 추천하는 단체들은 앞서 1월부터 의료중재원의 감정부 운영 방식을 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까지 ‘성명불상의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감정부서의 임직원들’을 피고발인으로 두 건의 고발장을 경찰에 제출한 상태다.

보건복지부는 의료중재원의 공정성과 신뢰도를 제고하기 위해 개선 사항을 검토 중이다. 의료기관정책과 관계자는 백지서명 관행에 대해 “문제점을 인지해 원외에서 감정서를 검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지난달부터 해당 시스템을 본격 도입해, 비상근 위원들이 회의 이후에도 의료중재원 밖에서 개인 핸드폰이나 컴퓨터를 활용해 감성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으며, 확인 이후에 서명하도록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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