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북부지법 민사11부(부장판사 이재영)는 일제시대 화가 고(故) 장우성씨 후손이 민족문제연구소를 상대로 제기한 친일인명사전 발행·게시 금지 가처분신청을 기각했다고 22일 밝혔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출판물에 대한 발행 및 판매 금지는 표현행위에 대한 사전억제에 해당돼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된다”며 “사전 발행을 금지할 정도로 진실이 아니거나 공공의 이익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일제시대 화가이자 해방 이후 서울대, 홍대 교수로 재직했던 장씨가 총후미술전에 작품 ‘부동명왕’을 출품하려 했고, 결전미술전에서 ‘항마’로 입선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지난해 4월 공개한 친일인사 명단에 포함시켰다. 총후미술전과 결전미술전은 친일미술인단체 조선미술가협회가 1943년, 1944년에 각각 주최했다. 장씨 후손은 “객관성과 합리성을 잃은 선정기준으로 친일사전에 게재하는 것은 당사자와 유족의 인격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지난해 7월 가처분 신청을 냈다.
재판부는 이와함께 법조인 출신인 고(故) 엄상섭씨의 후손이 당사자와 유족들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다며 제기한 가처분 신청도 같은 이유로 기각했다. 엄씨는 1938년 11월 일본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해 1948년까지 검사로 재직했다.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사무국장은 “학문과 출판의 자유 등 헌법 정신에 충실한 의미 있는 결정”이라고 말했다. 친일인명사전은 지난해 8월 발간될 예정이었으나 수록 대상자의 유족과 기념사업회의 이의신청 및 가처분신청이 잇따르면서 올해 8월로 연기됐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권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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