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경제] ‘총알택시 신고.’, ‘슬라이딩 서류 접수.’, ‘팩스 발송 대기조.’….
최근 제조·판매업계에서 공정거래위원회의 자진신고 과징금 감면제도와 관련해 유행하는 말이다. 공정위가 카르텔(가격 담합) 적발을 위해 1순위 자진신고자에게 과징금 100% 면제 혜택을 주면서 이를 선점하려는 업계의 자진신고가 급증하면서부터다.
◇작년 자진신고 건수 최다=공정위는 지난해 자진신고·조사협조자 과징금 감면제도를 활용해 적발한 담합건수가 총 29건으로 역대 최고수준을 기록했다고 23일 밝혔다.
과징금 감면제도는 협상게임 이론인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에서 유래됐다. 담합에 참여한 모든 업체가 침묵하면 죄는 드러나지 않지만 선착순 감형의 혜택을 제공하면 침묵보다 배신의 이득이 커져 앞다퉈 자백할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과징금 면제제도는 순탄치 않았다. 1997년 4월 첫 시행 당시 1순위 자진신고자에 대한 면제혜택을 75% 이상이라고만 명시해 유인책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2005년 4월 관련 규정 개정을 통해 1순위 자진신고·협조자에게 과징금 100% 면제혜택을 내건 후 각각 연평균 2건, 8건 수준에 머물렀던 감면제도는 지난해 들어 폭증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업계 공동행위의 경우 증거잡기가 어려워 과징금 감면제도에 의존하는 측면이 크다”며 “최근 경기침체가 가속화되면서 과징금 부담을 덜려는 업체들의 신고·협조가 급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순위를 잡아라” 업계 신고 백태=자진신고·협조를 통한 감면혜택은 선착순으로 2등까지만 주어진다. 공정위가 현장조사에 나가기전 미리 입증자료를 들고 나타나거나 조사가 시작된 후 가장 먼저 협조한 1등은 과징금을 한푼도 내지 않아도 되지만 2등은 50%만 감면된다. 때문에 1순위를 잡으려는 담합업체들간의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9월 순번제로 납품물량 나눠먹기를 해온 5개 엘리베이터 업체들의 담합에 대해 단일사건으로는 연간 최고금액인 400억원대 과징금을 부과했지만 1순위 자진신고자인 A업체는 100% 면제됐다.
2006년에도 SK건설이 공사 입찰 담합 사실을 경쟁사보다 1시간 늦게 공정거래위원회에 자진 신고했다가 자백 순위에서 밀려 과징금 15억원을 더 물게 된 적도 있다. 올들어서도 치약선물세트를 담합한 LG생활건강의 경우 1순위 자진신고에 따라 과징금이 면제됐고 2순위로 자진신고를 한 태평양은 50%의 과징금 감경조치가 내려졌다.
공정위 관계자는 “한 외국업체의 경우 담합 조사가 시작되자 공정위로 달려와 구두로 신고한 적도 있다”며 “완벽하게 자료를 준비하느라 시간을 지체한 회사가 불리하게 되는 점을 감안해 먼저 자진신고후 최장 75일간 보정기간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동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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