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자료, 체계적 수집·관리 더 늦추면 후대에 대한 죄악”

“미술자료, 체계적 수집·관리 더 늦추면 후대에 대한 죄악”

기사승인 2009-03-01 20:21:01

[쿠키 문화] “국립현대미술관조차 자료구입 비용이 전체 예산의 1%도 안 돼요. 체계적인 미술자료 수집과 관리를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됩니다. 이는 후대에 대한 죄악입니다.”

“1920년대 출생 1세대 화가들은 대부분 타계하고 원로 몇 분만 생존해계시죠. 빨리 서두르지 않으면 미술연구에 꼭 필요한 인쇄자료와 시청각자료, 화구 등이 온데간데없이 소실될 겁니다.”

김달진(54) 미술자료박물관장과 박래경(74) 한국큐레이터협회장의 표정엔 수심이 가득했다. 정부와 민간의 무관심 속에 중요한 미술사료들이 아무렇게나 폐기되고 망실되는 사태가 이대로 지속되면 영영 수습이 불가능하다는 조바심에 이들의 가슴은 나날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중이다.

두 사람을 서울 통의동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 1일 만났다. 경복궁 영추문 맞은편 골목에 위치한 국내 유일의 이 민간 미술자료박물관은 지하1층에 자리잡고 있다.

반지하 생활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종이류에 치명적인 습기를 뿜어내는 공간이다. 여름이면 비까지 새는 198㎡(60평)짜리 박물관에서 자료를 제대로 보존하기 위해 김 관장이 얼마나 악전고투하고 있을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곳에는 오세창의 ‘근역서화징’(1928), 세키노 타다시의 ‘조선미술사’(1932), 오지호·김주경 2인 화집(1938), 이왕가 미술관 요람(1941) 등 희귀품을 비롯해 서적과 도록, 정기간행물 등 2만점이 넘는 근대미술 자료가 보존돼 있다. 황무지와 같던 이 분야에서 김 관장은 36년간 거의 혼자 힘으로 이 자료를 모으고 200여편의 기고문을 발표하며 묵묵히 외길을 걸어왔다.

김 관장은 근대미술 자료 관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각종 작품평, 전시이력, 유통기록 등은 작가의 전작 도록을 작성하는 기초자료이자 국내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위작 시비를 가려내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하지만 정부나 일반인들은 작품 그 자체만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아쉽기 짝이 없는 현실입니다.”

박 회장 역시 상기된 얼굴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래된 종이나 쪽지가 집에 있으면 지저분하다고 못 참죠. 남편이 화가라도 주부가 미술관련 인쇄자료들을 ‘쓰레기’라고만 인식해 마구 버리는 식입니다. 다시 구할 수 없는 소중한 자료들이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미술사 연구의 기본이 자료 정리와 분석인데도 상황이 이렇다보니, 작가나 작품 연대가 잘못 기록되고 학위 논문에까지 버젓이 실리는 악순환이 확대 재생산되는 것이죠.”

두 사람은 미술자료 수집·관리를 위해 최근 의기투합했다.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유희영 서울시립미술관장, 서성록 한국미술평론가협회장, 표미선 한국화랑협회장, 박서보 이두식 이숙자 최종태 작가 등 미술계의 명망가 60여명을 발기인으로 해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후원회’를 발족시킨 것이다. 후원회는 지난달 10일 창립총회를 갖고 미술자료의 체계적인 수집과 박물관 공간 확보, 정부와 기업 후원 유치 등을 위해 발 벗고 나서기로 결의했다. 박 회장이 후원회장으로 선출됐다.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미술계가 힘을 모아야죠. 미국에는 미국미술기록보존소, 일본에는 국립근대미술관 아트 라이브러리, 프랑스에는 퐁피두센터 학술기록자료관 등이 있습니다. 우리도 국가적인 차원에서 서울에 제대로 된 미술자료관을 가질 수 있도록 힘을 다 쏟겠습니다.” 두 사람의 얼굴빛과 목소리에는 미술에 대한 한없는 애정이 묻어났다.

미술사료 보존에 힘을 보태고자 하는 일반인은 10만원을 내면 후원회원이 될 수 있다. 회원에게는 박물관 전시 및 각종 세미나 초대, 월간 ‘서울아트가이드’ 발송, 제휴 미술관·박물관 관람 할인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후원 및 기증 문의:02-730-6216).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호경 기자
hk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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