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대법관은 박재영 당시 형사7단독 판사가 야간 집회 금지 규정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지 5일 뒤인 지난해 10월14일∼11월24일 형사단독 판사들에게 “(위헌심판에 구애받지 말고)사건을 통상적으로 처리할 것”을 주문하는 내용의 메일을 3통이나 보냈다.
◇위헌심판에 구애받지 마라=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은 야간 집회를 명백히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신 대법관의 주문대로 재판을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진행한다면 관련 사건은 모두 유죄 판결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신 대법관은 지난해 10월14일 ‘대법원장 업무보고’라는 제목으로 형사단독판사들에게 보낸 메일에서 “위헌제청을 한 판사의 소신이나 독립성은 존중돼야 한다. 나머지 사건은 현행법에 의해 통상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또 11월 6일에 보낸 ‘야간집회 관련’ 제목의 메일과 11월 24일 보낸 ‘야간집회사건에 대하여’ 메일에서도 “적당한 절차에 따라 통상적으로 처리하라”고 거듭 주문했다. 위헌제청된 조문과 관련된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하는 권한은 해당 재판부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월권행위를 한 셈이다.
특히 근무평정권(인사고과권)을 쥔 법원장의 주문을 판사들이 무시하긴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유죄판결을 유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후임에게 넘기지 말라=11월6일 보낸 메일에서는 “부담되는 사건들은 후임자에 넘겨주지 않고 처리하는 것이 미덕이고 또 우리 법원의 항소부도 위헌 여부에 관한 여러가지 고려를 할 것”이라는 내용도 담았다.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되더라도 2심에서 위헌 여부를 고려할테니 1심 판사들은 재판을 신속히 처리하라는 것이다. 이 역시 부당한 개입으로 볼 수 있다. 24일에도 “피고인이 조문의 위헌 여부를 다투지 않고 결과가 신병과도 관계가 없다면 통상적인 방법으로 종국하라”며 다시 한번 신속한 처리를 종용했다.
26일에는 서울지법 전 판사에게 메일을 보내 “후임 재판부에 부담이 될 만한 사건은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라”며 “머물던 자리가 아름다운 판사로 소문나기를 바란다”고 썼다.
다른 재판부에 있는 판사들에게는 일반적인 미제 사건 해결 주문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재차 같은 내용의 메일을 받은 형사단독 판사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사법파동’으로 이어지나=법조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법관들의 집단행동으로 이어져 ‘사법 파동’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 판사는 “인사권자가 재판 방향에 대해 일일이 의견 제시를 하는 것은 사법권 침해”라며 “위헌 제청을 한 사건에 대해 한쪽의 결론을 유도하는 것으로 보이는 메일을 수차례 보냈다는 건 정말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한 재경지법 부장판사는 “대외비 이메일을 언론에 공개한 것 자체가 이번 사태를 그냥 넘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면서 “대법원이 이번 사태의 진상을 확실히 규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양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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