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마저 관조한 괴짜 화가 김전선의 ‘점선뎐’

죽음마저 관조한 괴짜 화가 김전선의 ‘점선뎐’

기사승인 2009-03-25 22:31:01

[쿠키 문화] “암은 병균이 감염된 게 아니다. 내 몸속에서 스스로 돋아난 종유석이다. 그래서 나는 내 암조차도 사랑한다. 내 삶의 궤적인 것이다. 피곤할 때 풀지 않은 피로가 쌓인 석회석이고, 굶고 또 굶으면서 손상된 내 내장 속에 천천히 새겨진 암벽화다.”

파란만장, 엽기만발, 독야청청으로 살아온 우리 시대의 화가 김점선. ‘괴짜 화가’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지만 대중의 폭넓은 사랑도 받았던 김점선의 돌연한 죽음은 문화예술계에 아직도 짙은 슬픔을 드리우고 있다. 이달 초 조용히 출간됐던 자서전 ‘점선뎐’은 그가 향년 63세로 22일 별세하면서 어느덧 유작이 되고 말았다. 이 책에는 세상과의 별리를 예감한 듯한 독백이 곳곳에 담겨 있어 고인을 그리는 많은 이들의 추모의 정을 더욱 깊게 한다.

김점선은 자신의 죽음마저도 관조한다. 그는 자신의 치명적 난소암을 ‘종유석’에 비유하며 “수십 년에 걸쳐서 몸의 소리를 무시한, 야망과 과욕, 인문주의적인 편식에서 나온 독들이 저절로 만들어낸 퇴적층”이라고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는 의사가 “내일 수술한다”며 입원실로 찾아와 어디 어디를 잘라낼 거라고 설명하자 이렇게 말했다. “이왕 배를 여는 데 왕창 잘라내 주시오. 나는 이제까지 살면서 긴 창자 때문에 쓸데없이 섬유소를 먹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려왔소. 이왕 배를 열 거면 나를 도와주시오.”

김점선 답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부터 머리에 빗질을 안 했다는 그,
처음 본 청년의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즉석에서 “결혼하자, 나하고 결혼하자!”고 큰 소리로 외친 이래 20년을 함께 살았다는 이 자유로운 영혼은 생의 끝 자락에서 이렇게 다짐한다. “살 때도 매일 같이 수양하면서 담백하게 살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죽음에 대해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 죽음도 삶의 마지막 부분일 뿐 삶과 동떨어진 괴물이 아니다. 그저 초지일관해야 한다.” 고통을 물감 삼아 인생의 환희를 그려왔던 고인은 이제 세상과 영영 이별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호경 기자
hkkim@kmib.co.kr
김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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