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상 주는 권오수씨 “상은 내가 쏘는 저녁 한 끼”

보일러상 주는 권오수씨 “상은 내가 쏘는 저녁 한 끼”

기사승인 2009-06-02 17:57:02

[쿠키 사회] 기술학원에서 보일러공들을 길러내며 평생을 보낸 보일러 강사가 자신의 이름을 딴 보일러상을 제정, 올해로 두 번째 시상식을 갖는다.

오는 13일 서울 영등포의 한 결혼식장에서 열리는 제2회 ‘권오수 보일러대상’ 시상식에서는 송기정씨(대성엔지니어링 근무) 등 17명의 현장 보일러기사들이 상을 받는다. 상장과 상패, 기념시계가 전부인 초라한 시상식이다. 그러나 1년 내내 뜨거운 보일러실에서 일하는 우리나라 30만 보일러공들에게 바쳐진 유일한 상이다. 이 상을 만든 권오수(61)씨는 “돈이 없어서 상금은 못 주고, 내 돈으로 저녁 한 끼를 낸다”고 말했다.

권씨는 20대 중반에 보일러학원 강사 일을 시작해 지금껏 외길을 걷고 있다. 한때 학원을 설립하기도 했지만 경영이 적성에 맞지 않아 다시 강사의 길로 나섰다. 서울 종로5가 제일에너지교육원, 동대문 국제냉동보일러기술학원 등이 그의 주무대였다. 지금까지 권씨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15만명이 넘는다. 보일러 분야 기술서도 100여권을 써냈다. 300쪽 짜리 소설책 분량으로 환산하면 5000권 정도의 분량이다. 권씨는 “내 책으로 공부한 사람이 100만명이 넘는다”며 “보일러 분야에 종사하는 분이라면 나를 아는 분이 한 빌딩, 한 회사마다 한 사람 정도는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2007년 제자들은 권씨에게 “선생님 이름으로 상을 하나 달라”고 부탁했다. 권씨는 “내가 그런 상을 줘도 되나?” 그러면서도 끝내 수락했다.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먹는 우유 한 잔도 살균과정에서 보일러가 필요합니다. 옷을 염색하기 위해서도 보일러가 필요하고. 우리가 먹고 쓰는 의식주는 보일러가 없으면 안됩니다. 우리나라 에너지의 33%를 보일러가 쓰고, 보일러실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30만명이 됩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알아주는 이가 없어요. 직업에 회의를 느끼는 보일러기사들도 많고. 이 친구들에게 위로를 주고 용기를 줘야겠다, 그런 생각으로 상을 만든 겁니다.”

수상자들은 보일러 관련 단체나 협회의 추천을 받아 선정한다. 자격증 급수가 높은 사람들이 절반 가량되고, 근무경력이 오래된 사람들이 나머지 절반쯤 된다고 한다. “상을 주면서도 이거 내가 줘도 되는지 늘 걱정스럽다”는 권씨는 “그래도 받는 이들이 좋아하니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김남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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