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서울 묵동 묵현초등학교에 다니는 한모(12)양은 지난 8일 수업을 마치고 사촌동생과 함께 근처 H아파트 놀이터를 찾았다. 이 놀이터는 바닥에 고무 매트가 깔려 있고, 그네며 시소에 알록달록하하게 페인트가 칠해져 좋아보였다.
하지만 놀이터 입구에 들어서기도 전에 경비원이 다가와 무서운 얼굴로 대뜸 "여기에 사느냐"고 물었다. 한양이 고개를 가로젓자 "이 아파트에 살지 않으면 놀 수 없으니 나가라"고 했다. 얼굴이 빨개진 한양은 영문도 모른 채 발길을 돌렸다.
청담동 A유치원 교사인 문모(35·여)씨는 최근 아이들을 데리고 인근 D아파트 놀이터를 찾았다가 내쫓겼다. 유치원에 놀이터가 없어 종종 인근 아파트 놀이터를 찾았던 문씨는 "신나게 놀던 아이들이 '얘들아, 나가야 된대'라는 말에 풀이 죽어 뒤따라 나오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많이 아팠다. 아이들이 놀면 얼마나 험하게 논다고 이러는지 야박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아파트 놀이터가 담장을 높이 쌓고 있다. 관리사무소가 쾌적한 환경 조성과 방범 등을 이유로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면서 아이들까지 무조건 내쫓고 있다. 도를 넘어선 '아파트 이기주의' 때문에 애꿎은 동심만 멍들고 있는 것이다. 공동체 의식을 훼손하는 지나친 사유재산권 행사라는 비판이 높다.
아파트 이기주의는 외부인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는 강남의 고급 아파트뿐만 아니라 서울시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후암동 M아파트에 사는 권모(35)씨는 며칠 전 4살짜리 딸을 데리고 근처 B아파트 놀이터에 갔다가 기분만 상한 채 돌아왔다. 경비원은 '아파트 엄마들이 싫어한다. 나가달라'며 권씨 부녀를 황급히 내쫓았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외부 아이들의 출입을 차단해달라는 요청이 많아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전했다.
놀이터에서 내쫓긴 아이들은 함께 어울리는 통합과 조화보다는 차별을 배울 수밖에 없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옆집 아이가 우리 놀이터 흙 밟는 것도 막는 야박하고 비참한 세상"이라며 "아이들은 부모가 가진 부와 상관 없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친구들과 어울리고 이해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어려서부터 끼리끼리 지내게 되면 사회통합 측면에서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자체가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충분히 마련해줘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중랑구의 경우 16개동에 17만여가구가 살고 있지만 어린이공원은 42개에 불과하다. 이마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고장이 잦고 노숙인이 모여들고 있다. 구청 홈페이지에는 놀이공간을 확충해달라는 민원글이 심심찮게 올라오지만 답변은 늘 예산 부족이다. 56만여가구가 거주하는 강남구에 어린이공원은 61개 뿐이다.
윤철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권익센터 부장은 "놀이공간은 좀 더 많은 아이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공유해야 한다"며 "아파트 이기주의만을 탓할 수 없는 만큼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권지혜 이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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