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 특집] 노조전임자 임금 규정 13년째 표류

[노사관계 특집] 노조전임자 임금 규정 13년째 표류

기사승인 2009-06-29 09:5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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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경제] "과격한 노동쟁의가 한국의 진면모를 왜곡시키고 있다. 이 문제만 개선되면 한국의 투자매력도는 굉장히 올라갈 것이다."

21년간의 한국 생활을 마치고 최근 귀국한 태미 오버비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대표가 한국 사회에 마지막으로 남긴 고언이다.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노사관계 선진화를 외면한 채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얘기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 이후의 한국 경제를 생각한다면 이 문제는 더욱 절박하다.

올 하반기 뜨거운 쟁점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규정' 문제를 중심으로 한국 노사관계의 현안과 문제점, 상생의 노사관계를 위한 대안을 2회에 걸쳐 짚어본다.

민주노총 초대 사무총장 고(故) 권용목씨는 저서에서 “노동계는 부패로 해가 뜨고 진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노조가 비대해진 만큼 노조 간부들의 비리가 심심찮게 터져나오고 있다.

올 들어 부산 택시노조 고위 간부가 택시운송사업조합 전 이사장으로부터 2억5800만원의 뇌물을 받았다가 구속됐다. 현대·기아차 노조는 간부들의 도박 사건으로 곤혹을 치뤘다. 현대차 노조는 전 집행부가 노조창립기념품 선정과정에서 저지른 비리 때문에 은행에 5억3000여만원을 물어줘야 할 처지다. 이 같은 노조 간부들의 부패와 노조 내부 비리는 노조전임자들의 특권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권력화·특권화되는 노조전임자=노조전임자란 근로자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노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면제받고, 노조 업무에만 전념토록 회사가 인정한 조합원을 말한다. 기업들은 ‘생산활동을 하지 않고 투쟁을 주업으로 하는’ 노조전임자들이 노사관계 악화의 주범이라고 인식한다. 이른바 ‘귀족 노조’ 폐해도 전임자들의 특권화가 부른 결과라고 본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노2010년부터 조건 없이 노조전임자 급여 지급을 금지해줄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전임자 임금을 노조가 자체 부담토록 함으로써 노조전임자 수의 거품을 빼고 기득권을 제거해야 합리적 노조 활동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은 ‘노조전임자 및 노조재정에 관한 실태조사’ 보고서(2008년)를 통해 국내 노조전임자 1인당 조합원 수를 122∼150명 정도로 추산했다. 일본 500∼600명당 1명, 미국 800∼1000명당 1명, 유럽 1500명당 1명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한국의 노조전임자 수는 지나치게 많은 편이다.

단체협약 상 전임자 수(노조 1곳 당 평균 3.1명)보다 실제 전임자 수(3.6명)가 많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단협 상 전임자 수는 98명이지만 임시상근자 등을 포함해 모두 210여명이 노조활동을 하며 사측의 급여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임자는 조합 내에서도 특별한 대우가 보장되는 특권이자 권력이다. 노동연구원 조사에서 기업 55.5%가 전임자들에게 평균 임금 수준을, 28.2%는 평균 임금 이상으로 지급한다고 각각 답했다. 조합원 수가 많을 수록 전임자 임금 수준 역시 높아져 1000명 이상 대규모 사업장은 평균 이상 지급률이 37.0%에 달했다. 1000명 이상 사업장 전임자의 1인당 평균 연봉은 5318만원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노조전임자들에게는 평 조합원들이 누릴 수 없는 추가적 혜택이 따른다. 노무에서 제외되지만 잔업 수당이나 연·월차 휴가 수당이 지급되고, 출퇴근 시간이 자유롭다. 현대차의 경우 지난해 말부터 몇 개월간 대부분 공장에서 잔업과 특근이 없어져 현장 근로자들의 수당이 월 평균 100만원 안팎씩 깎였지만 전임자들은 단협에 따라 월 135시간에 해당하는 수당을 자동으로 인정받았다. 기아차 역시 잔업·특근이 없는 상황에서 노조전임자들에게 월 65시간씩의 연장근로 수당을 지급했었다.

◇노동계 반발 속 13년째 관련법 방치 중=노동계는 전임자 임금 지급을 금지하는 것은 노조활동 전체를 봉쇄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전임자 임금을 취약한 노조가 부담하도록 하면 노조 자체가 와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노동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기준 전국 5099개 노조 가운데 78.2%가 완전 전임자를 두고 있고, 특히 조합원 수 1000인 이상 사업장은 96.7%의 전임자 보유율을 나타냈다. 완전전임자 수는 총 1만500여명으로 추산됐다. 기업들은 이들의 급여로 모두 4288여억원을 지불했다.

1997년 3월 제정된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4조 2항과 84조 4항은 ‘사용자는 노조전임자에 대해 임금 지급 의무가 없으며 급여를 지급하는 것은 부당노동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임금 지급 관행, 노조 반발 등을 고려해 법 시행이 3차례나 유예됐고, 13년간 이 조항은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로 방치됐다. 2006년 12월의 마지막 노조법 개정에 따라 2010년 1월1일부터 시행키로 돼 있지만 막판까지 사용자단체와 노동자단체 간 시행과 유예, 혹은 개정 등을 놓고 치열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노동부는 ‘법대로 내년부터 실행한다’는 방침이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지난 25일 “고용친화적 노사관계를 만드는데 전력하겠다”며 “수년째 미뤄진 복수노조와 노조전임자 문제를 꼭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뭔데 그래◀ 예비군 동원훈련 연장 적절한가

지호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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